공채·파벌 없는 쿠팡…동시 통역만 200명 달하는 '다국적 기업'

입력 2023-12-24 18:18   수정 2023-12-25 09:58


쿠팡엔 신년사가 없다. 2010년 창업 때부터 줄곧 그랬다. 매년 초 그룹 회장 또는 회사 대표가 그해 경영 방침을 발표하는 상당수 국내 기업과의 차이점 중 하나다. 대신 쿠팡에는 ‘임직원이 지켜야 할 15계명’이란 게 있다. 최고경영자(CEO)로 누가 오든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든 철칙이다.

첫 번째는 ‘고객이 와우(Wow)를 외치도록 하라’다. 쿠팡의 존재 이유다. 나머지 14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리더는 전체 그림을 보고 오너처럼 결정한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전투에 집중한다’ ‘광적으로 단순화에 집착하라’ ‘리더는 야근이 아니라 결과로 말한다’ ‘지위가 아닌, 지식이 권위를 만든다’ 등이다.
공채가 없는 조직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김범석 쿠팡 창업자(쿠팡InC 의장)는 미국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에 이식하기 위해 쿠팡만의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데 이처럼 공을 들였다. 공채가 없는 것도 창업 13년 차 기업에 ‘쿠팡 DNA’를 심기 위해 김 창업자가 선택한 수단이다.

쿠팡이 공채를 하지 않는 건 파벌주의 등 한국식 조직 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다. 쿠팡은 대부분의 직원을 15계명에 근거해 경력자로 채운다. 일반 직원은 네 번, 임원은 여섯 번의 면접을 거쳐야 한다.

면접당 인터뷰 시간은 1시간. 해당 분야에서 경쟁자에게 꿀리지 않는 ‘프로’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입사할 수 있다. 일단 조직에 들어온 이들은 오로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좋게 보면 철저한 일 중심의 조직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무한경쟁의 정글이다.

상당 기간 이마트(오프라인 유통), CJ대한통운(물류) 같은 1등 경쟁사에선 웬만하면 경력자를 뽑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였다. 이들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자에게 알게 모르게 각인된 전 직장 DNA가 쿠팡식 조직문화 형성을 방해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이마트, CJ 등에서 상품 전문가를 뽑기 시작한 건 2021년 상장 이후부터”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회의 소집할 수 있어
기존 국내 기업들과의 또 하나 차이점은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다. 쿠팡은 2020년 코로나19 창궐 후 본격화한 화상 회의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상당수 실리콘밸리 기업조차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쿠팡은 대외 커뮤니케이션 부문 등 일부 조직을 제외하고 여전히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삼는다.

화상으로 이뤄지는 회의는 한국, 미국, 대만, 싱가포르 등을 연결해 하루에만 수백 건 열린다. 회의 소집은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소집 기준은 안건의 중요성과 긴급성이다. 쿠팡 전직 임원은 “과장급에 해당하는 연차의 직원이 회의를 소집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다른 부서 임원들도 화상 회의에 들어와야 한다”며 “이때 회의 참가자들은 각자가 어떤 직급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회의 안건만 놓고 협의하고 논쟁한다”고 설명했다.
C레벨 네 명 중 세 명이 외국 국적자
외국 국적 임직원들이 소통에 어려움 없이 근무하는 것도 특징이다. 김범석 대표, 강한승 한국 쿠팡 대표, 거라브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 해럴드 로저스 최고행정책임자(CAO) 네 명의 C레벨 중 강 대표를 제외한 3명이 외국 국적자다.

쿠팡은 한국 본사를 포함해 상하이, 베이징, 홍콩, 시애틀, 도쿄, 싱가포르 등 전 세계 10개 도시에 오피스를 두고 다국적 인재를 뽑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인도, 중국, 대만, 스위스, 베트남, 미얀마 등 국적도 다양하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출신도 수두룩하다. 외국인이 워낙 많다 보니 쿠팡에서 상시 근무하는 동시 통역자만 150~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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