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엔 신년사가 없다. 2010년 창업 때부터 줄곧 그랬다. 매년 초 그룹 회장 또는 회사 대표가 그해 경영 방침을 발표하는 상당수 국내 기업과의 차이점 중 하나다. 대신 쿠팡에는 ‘임직원이 지켜야 할 15계명’이란 게 있다. 최고경영자(CEO)로 누가 오든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든 철칙이다.
첫 번째는 ‘고객이 와우(Wow)를 외치도록 하라’다. 쿠팡의 존재 이유다. 나머지 14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리더는 전체 그림을 보고 오너처럼 결정한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단 하나의 전투에 집중한다’ ‘광적으로 단순화에 집착하라’ ‘리더는 야근이 아니라 결과로 말한다’ ‘지위가 아닌, 지식이 권위를 만든다’ 등이다.
쿠팡이 공채를 하지 않는 건 파벌주의 등 한국식 조직 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다. 쿠팡은 대부분의 직원을 15계명에 근거해 경력자로 채운다. 일반 직원은 네 번, 임원은 여섯 번의 면접을 거쳐야 한다.
면접당 인터뷰 시간은 1시간. 해당 분야에서 경쟁자에게 꿀리지 않는 ‘프로’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입사할 수 있다. 일단 조직에 들어온 이들은 오로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좋게 보면 철저한 일 중심의 조직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무한경쟁의 정글이다.
상당 기간 이마트(오프라인 유통), CJ대한통운(물류) 같은 1등 경쟁사에선 웬만하면 경력자를 뽑지 않으려는 경향도 보였다. 이들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자에게 알게 모르게 각인된 전 직장 DNA가 쿠팡식 조직문화 형성을 방해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이마트, CJ 등에서 상품 전문가를 뽑기 시작한 건 2021년 상장 이후부터”라고 설명했다.
화상으로 이뤄지는 회의는 한국, 미국, 대만, 싱가포르 등을 연결해 하루에만 수백 건 열린다. 회의 소집은 직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소집 기준은 안건의 중요성과 긴급성이다. 쿠팡 전직 임원은 “과장급에 해당하는 연차의 직원이 회의를 소집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다른 부서 임원들도 화상 회의에 들어와야 한다”며 “이때 회의 참가자들은 각자가 어떤 직급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회의 안건만 놓고 협의하고 논쟁한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한국 본사를 포함해 상하이, 베이징, 홍콩, 시애틀, 도쿄, 싱가포르 등 전 세계 10개 도시에 오피스를 두고 다국적 인재를 뽑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인도, 중국, 대만, 스위스, 베트남, 미얀마 등 국적도 다양하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출신도 수두룩하다. 외국인이 워낙 많다 보니 쿠팡에서 상시 근무하는 동시 통역자만 150~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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