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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그린스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사진)이 “한국이나 코스타리카와 같은 나라들이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글로벌 무역 환경은 더 이상 최빈국의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코스타리카 출신의 그린스판 사무총장은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무역과 투자는 개발도상국들의 가파른 경제 성장을 견인해 온 두 개의 기둥이었고, 앞으로도 (이들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짚은 뒤 “선진국들이 쌓아 올린 새로운 장벽과 (후발 주자들이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수준으로 인해 개도국들은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세운 장벽이란 반도체, 전기차, 청정에너지 등 자국 내 핵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 등의 방식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들이는 행태를 말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유럽연합(EU)의 반도체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린스판 사무총장은 “선진국들이 되살린 이런 종류의 산업 정책은 개도국들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며 “보호주의 장벽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조금을 뿌릴 재정적 여유가 없는 개도국들은 관세와 같은 무역 제한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자국 경제 부양만을 생각한 선진국들의 정책이 국가 간 원활한 교류를 차단, 자유 무역에 기반한 개도국들의 성장을 차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환경 보호라는 구실을 앞세워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이 악용되는 사례도 비중 있게 거론됐다. 2019년 EU가 니켈 수출 제한이 WTO 협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를 제소했고, WTO가 1심에서 EU의 손을 들어 준 데 대해 그린스판 사무총장은 “낡은 WTO 협정이 (현실에 맞게) 개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선진국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힘을 갖게 하는 혼란스러운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산림이 벌채된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일절 금지한 EU 집행위의 규정도 “너무 징벌적”이라는 게 그린스판 사무총장의 시각이다. 그는 “(개도국들을) 벌주기만 하고 지속가능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돕지 않는다면 미래가 있겠는가”라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역시 개도국에 선진국과 동일한 세금 부담을 지운다는 점에서 매우 부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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