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사모펀드(PEF) 사이에선 한때 “경쟁 입찰에 MBK가 등장하면 귀국 비행기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나왔다. 저금리 시대에 조달한 막대한 펀드 자금을 바탕으로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해 매물을 쓸어담는 MBK파트너스의 투자전략 때문이었다. MBK파트너스가 동북아시아 최대 PEF로 고속성장한 비결이기도 하다.
작년 이후 고금리가 현실화하자 이런 전략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조달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고가로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론 목표수익률을 거두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 창업자 김병주 회장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기반한 ‘지배구조 개선’을 내건 주주행동주의에서 해법을 찾았다. 2004년 국내 PEF 제도 도입 후 20년간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대기업과의 상부상조’ 원칙을 깨고 ‘대기업 경영권도 바꿀 수 있다’는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해부턴 이런 전략을 더욱 구체화했다. 오스템임플란트가 작년 9월부터 행동주의펀드인 KCGI의 공격을 받자 MBK파트너스는 UCK파트너스와 손잡고 창업자인 최규옥 회장을 설득해 올해 1월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 지분을 확보했다. 최 회장과 외견상 동거하는 모습을 취했지마 주주 간 계약을 통해 사실상 경영권을 쥐었다.
지난달엔 BHC 창업자인 박현종 회장을 이사회에서 축출했다. MBK파트너스는 2018년 박 회장이 경영자인수(MBO) 방식으로 BHC를 인수하는 것을 지원했지만 이후 경영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급기야 이달 초엔 오너 일가인 조현식 고문 등과 손잡고 한국앤컴퍼니를 대상으로 공개매수에 나섰다. 공개매수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대기업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현실화했다.
업계에선 “국내에선 PEF가 기업과 대치하면 영업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미국 자본시장에 익숙한 김 회장은 개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조원 가까운 이익을 내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을 5000억원 수준에 확보하고 미국과 같은 지배구조를 갖춘다면 MBK파트너스 전략이 시장에서 재평가될 것으로 봤다. MBK파트너스의 주요 출자자(LP) 대다수가 캐나다연금(CPPIB),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캘퍼스), 아부다비투자청 등 해외 자본으로 구성된 점도 김 회장이 투자전략을 바꾸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MBK파트너스의 한국앤컴퍼니에 대한 공개매수는 실패로 끝났지만 추가 공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주요 ‘키맨’이 투자 키워드로 ‘지배구조’를 언급하고 있어서다. MBK파트너스 스페셜시추에이션(SS)펀드를 이끄는 부재훈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공개매수 성패와 무관하게 한국앤컴퍼니와 같이 지배구조에 큰 문제가 있어 기업가치가 훼손된 기업에 대해선 추가적인 투자 기회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약한 지배구조를 갖춘 대기업을 대상으로 공개매수 등을 통해 추가적인 경영권 공격 시도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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