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광기 어린 사랑을 다룬 신작 장편소설 <광인>을 출간한 이 작가를 지난 22일 서울 연희동에서 만났다. 네 번째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지금껏 쓴 작품 중 가장 잘 쓰고 싶었고,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광인>은 세 남녀의 사랑과 욕망을 치열하게 파고든다. 위스키 만드는 여자 ‘하진’과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음악가 ‘준연’과 주식쟁이 ‘해원’. 세 사람의 긴장 관계를 중심으로 술과 음악, 돈에 대한 집요한 묘사와 파국으로 치닫는 서사가 진득한 위스키 향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이 작가와 마주 앉았을 때 가장 먼저 꺼낸 얘기는 ‘분량’이었다. 명색이 쇼츠 시대인데, 680쪽짜리 소설을 내서다. 분량을 줄일 고민은 안 했을까. 이 작가는 “전혀 안 했다”고 잘라 말했다. “짧고 즉각적인 콘텐츠는 책이 아니더라도 많지 않나요? 제가 동경했던 문학들처럼, 두껍지만 두꺼운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 흔치 않은 ‘장편형 소설가’다. 보통 소설가들이 단편소설로 등단해 소설집을 내고 장편소설로 넘어가는 것과 달리, 등단도 장편소설로 했고 이후 낸 작품도 모두 장편이다.
위스키는 작품 속에서 주요 모티프로 등장한다. 하진의 직업이자 ‘내가 사랑한 것이 나를 망치는’ 사랑에 대한 상징으로, ‘현실에서 진실을 증류한’ 예술의 정수로 묘사된다. 이 작가는 “2~3년 전부터 위스키에 빠지면서 ‘증류’라는 키워드에 대해 고민했다”며 “인간의 삶과 욕망을 증류하면 결국 사랑이 남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준연은 해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그게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체험을 만들어내야 해요. 그게 아니라면 뭘 제대로 만든 게 아닌 거죠.”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어떤 체험을 하기를 꿈꿀까.
“독자들이 지독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실패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썼어요. 소설 속에서는 언제든,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잖아요. 이야기가 우리를 매혹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그리고 우리는 그 체험을 통해 비로소 삶의 진실을 익히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어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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