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험지에 출마하거나 비례대표 순번을 받을 것이란 정치권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 5000만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며 탈(脫)여의도 화법을 선언했던 그대로,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 수락 연설에서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시원하게 밝혔다.
27일 정치권에서는 '73년생 정치 초보' 한동훈의 불출마 선언에 따른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 장관의 불출마 선언이 누구를 향한 메시지인가를 놓고 여야는 모두 긴장한 모습이다.
가장 큰 압박을 받는 사람은 단연 상대 당을 이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민주당 비주류 혁신계인 이원욱 의원은 한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이재명 대표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이 의원은 이날 오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이 대표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영향을 받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연동제를 포기하고 병립형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를 자신의 출마나 비례대표로 도망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꼼수로 쓴다면 (이 대표는)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이런 문제를 잘 짚어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병립형 회귀'를 시사한 이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재명 사퇴론'을 강력하게 부인해온 '친명계' 정성호 의원도 전과는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한동훈 바람이 분다면 이재명 당 대표도 그에 상응할 만한 또 나름의 결심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이날 MBC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한동훈 바람이 여당의 공천 혁신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고 하면 민주당도 거기에 대응해 상응하는 정도의 공천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이 대표 사퇴나 통합 비대위 구성에 대해선 "지금은 그런 걸 논의하는 시기가 아니다"라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은 당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친윤·중진 의원들을 향한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요구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다시 '희생'의 불씨를 댕겼기 때문이다.
앞서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당 지도부와 치윤·중진 의원들을 향해 '희생'을 요구한 이후, 이를 받아들인 인사는 장제원 의원이 유일하다.
총선 출마자로 거론되는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날 "(한 위원장이) 스스로 불출마를 공표하면서 거취에 따른 내외부적으로 여러 변동성이 사실은 컸었는데 이런 부분을 아주 초스피드로 본인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해 준 것은 상당히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 후보들 역시 공천과 관련한, 출마와 관련한 당의 절차, 또 본인 스스로 진퇴 여부 등에 대한 결정 속도가 상당히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오전 KBS 라디오에 출연해 "(한 위원장이)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로 국가 운명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내려놓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홍석준 의원은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한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은)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크고 무섭다"며 "원칙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당내에도 걸고, 불체포특권 포기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이재명의 민주당과도 확실한 차별화를 보이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에 당내에서는 더 어떻게 보면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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