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1%대 초반 성장에 그친 올해보다 경제가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기관이 내년에 2%대 초반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도 성장, 고용, 물가 등 거시지표가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도 있다. LG경영연구원은 내년에도 1%대(1.8%) 성장을 점쳤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 둔화로 세계 경제가 부진에 빠지면서 한국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도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1%대로 보고 있다. 2년 연속 1%대 성장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과거 한국 경제는 위기 때 곤두박질쳤다가도 곧바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지만 지금은 회복 탄력성이 예전 같지 않다.
기업들의 체감 온도는 더 낮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는 내년에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본다’는 기자의 말에 “정부만 그렇게 본다”며 시큰둥해했다. 한 전직 장관은 사석에서 “두 개의 전쟁을 하는데 경기가 좋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겹쳐 세계 경제 회복세가 강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요즘엔 하마스를 지지하는 예멘 반군 후티가 홍해를 막으면서 해상 운임이 뛰고 물가 안정에 복병이 되고 있다.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으로, 지난 수십 년간 우리가 누린 전 지구적 세계화가 막을 내리면서 공급망이 불안해졌다. 중국의 자원 수출 통제로 언제 제2, 제3의 요소수 대란이 재발할지 모른다. 게다가 내년엔 국내 총선을 비롯해 미국 대선, 대만 총통 선거 등 굵직한 선거가 이어진다. 선거 결과에 따라 지정학적 리스크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내수가 빠르게 살아나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막대한 빚 부담과 고금리로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든 상태다. 내년 물가는 올해보다는 상승률이 낮아지겠지만 여전히 절대 수준이 높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은 언제 어디서 부실이 터질지 불안불안하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단기간에 내릴 가능성도 별로 없다. 상당 기간 긴축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찍고 살아나는 건 다행이다. 하지만 한은의 한 금융통화위원은 “반도체만 호황”이라고 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순 있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에 대해 “IT(정보기술) 빼면 1.7%”라고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돈을 풀어서 해결할 상황도 아니다. 전임 정부 때 과도한 확장재정으로 국가채무가 이미 1000조원을 넘었다. 현 정부가 긴축 예산을 짰다고 하지만 내년에도 나랏빚은 62조원 늘어난다.
무엇 하나 만만치 않다. 해법은 경제 체질 개선인데, 정부가 낸 규제개혁 법안 상당수는 국회에 막혀 있다. 연금·노동·교육개혁은 갈 길이 멀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포퓰리즘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새 경제팀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내년 경제도 장밋빛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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