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순위 16위 건설사를 덮친 유동성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여러 건설사가 줄줄이 문 닫은 2008~2012년의 악몽을 연상시킨다. 가까운 장래에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큰 PF 우발채무만 2조5000억원에 달하는 태영건설은 혹독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건설·시행사를 넘어 금융사 부실로 이어질 위험도 만만찮다. 업계 10위권 ‘1군 건설사’의 상당수도 10%대 고금리 브리지론(사업 초기 단기 차입금) 만기 연장으로 버티는 상황이다.
물론 과도한 공포감은 금물이다. 10여 년 전 위기 때는 저축은행이 부실 주역이었지만 지금은 은행 증권 등이 위험을 나눠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금융당국이 오랫동안 PF 부실을 관리하며 손실 흡수 능력을 확충해 온 것도 다른 점이다. 정부는 37조원의 단기시장안정자금을 포함해 총 85조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고, 이 중 60조원이 투입 가능 재원으로 대기 중이다. 어제 금융시장에서 금리 스프레드 등 변동성이 크지 않았던 이유다.
당장 큰 혼란이 없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에서 봤듯이 금융시장은 예상 밖 촉발 요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쏠림’이 특징이다. PF 위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PF 문제는 새해 상반기에 본격적으로 터질 것이란 게 다수 전문가의 진단이다. PF 보증 규모가 21조7000억원에 달하는 증권사, 위험한 브리지론 비중이 큰 여신전문회사(캐피털)에 대한 선제적 관리가 필수다.
신속하고 엄정한 옥석 가리기로 줄도산을 차단해야 한다. 그러자면 채권금융단의 지원 자금은 대주주의 자구노력이 확실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일단 살리고 보자’는 식의 퍼주기 해법은 시스템 위기를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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