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팬데믹을 겪은 이후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대부분 해외발 리스크였다.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유례없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하지만 최근 들어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우리가 방치해온 리스크, 다름 아닌 저출산·고령화다.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출산율 통계, 결혼하지 않고 결혼할 생각조차 없는 청년들, 늘어나는 간병 부담, 소멸해가는 지방 도시 등 초저출산에 따른 충격이 나라 전체를 흔들고 있다.
높은 경쟁밀도가 낳은 초저출산
저출산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겪었고 지금도 안고 있는 문제다. 대체로 후진국은 출산율이 높고, 선진국은 낮다. 왜 그럴까. 농업사회나 초기 산업사회에선 자녀를 많이 낳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지 않고 아이를 노동력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되면 달라진다. 기업들이 임금이 낮은 후진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면 대체로 서비스업 일자리 비중이 높아진다. 서비스업은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배달, 서빙, 캐셔 등 저소득 서비스직으로 양분된다. 자식을 고소득 전문직으로 키우려는 열망으로 교육비가 치솟기 시작하면 출산율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어쩌다가 ‘지구상 소멸 1호 국가’가 됐나. 우리의 문제는 그 속도가 유독 빠르고, 정도도 심하다는 데 있다. 60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10%에서 20%로 높아지는 기간을 살펴보면 프랑스는 145년, 영국은 80년이 걸렸다. 한국은 불과 17년(2000~2017년)이다. 일본보다 약 8년 빠르다. 그만큼 급격한 인구 변동에 적응할 시간이 적다는 의미다. 게다가 우리는 합계출산율 1.3명 이하가 3년 이상 지속된 초저출산 국가다. 초저출산과 저출산을 구분하는 이유는 초저출산이 발생하면 출산율이 다시 올라가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1.0명에서 1.5명으로 높아질 경우 50%만 상승하면 되지만, 0.5명에서 1.0명으로 가려면 100% 높아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공존의 길 모색하는 새해가 되길
한국의 인구 변동이 극단에 내몰린 이유로 전문가들은 △높은 부동산 가격과 사교육비 △서울로의 도시 집중화 △젠더(남녀) 갈등 △비교 사회 등을 꼽는다. 이런 원인의 대부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나친 경쟁’이다. 물론 일부 예측이 빗나가긴 했지만 인구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제시한 분석을 참고할 만하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두 가지를 꼽는다면 본인 생존 욕구와 후속 세대 재생산의 욕구다. 맬서스는 “경쟁이 적은 사회에선 재생산에 문제가 없지만 경쟁이 심한 사회에선 본인의 생존 본능이 후손 재생산 본능에 우선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유치원부터 경쟁을 시작할 정도로 경쟁 밀도가 높은 사회다. 지금의 초저출산 현상이 이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 청년들의 사회적 진화 과정이 아니라고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정부는 15년간 인구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위해 약 380조원의 재정을 투입했다. 지금도 현금 퍼붓기식 지원책이 계속 나온다. 물론 이런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각자도생’, 갈등·분열의 사회를 바꾸지 않고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상생·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보다 종합적이고 정교한 정책 패키지를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