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가 10명 중 6명은 역대급 ‘공급 가뭄’에도 올해 상반기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고금리와 대출 규제에 따른 거래 절벽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까지 더해져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내 집 마련 적기로 ‘하반기 이후’라는 응답이 많았다. 올해 부동산시장에 큰 영향을 줄 변수로는 ‘PF 부실 규모’와 ‘기준금리 동결·인하 여부’가 꼽혔다.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양도소득세 등 세제와 비아파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31일 한국경제신문이 건설사, 시행사, 학계, 금융권 등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2024년 부동산시장 전망과 투자전략’을 조사한 결과다.
이번 설문에서 전문가의 59%는 상반기 아파트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가격 상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매매시장 약세를 점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금리 등 대출 부담’(40.7%) 때문이었다. 하락 응답자의 55.9%는 ‘집값 내림세가 올해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 아파트도 당분간 하락세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문가의 44%는 ‘상반기 서울 아파트값 하락’을 점쳤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고금리와 정부의 대출 억제 조치 등으로 주택 실질 구매력이 약화했다”며 “거래 절벽에 따라 외곽지역과 거래가 활발한 대단지 위주로 집값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2023년 9월 특례보금자리론을 중단한 데 이어 새해에는 기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보다 강력한 규제인 ‘스트레스 DSR’을 도입할 방침이다.
전세시장은 매매시장과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본 비율(61%)은 보합(20%)과 하락(19%)을 압도했다. 상승 답변자 네 명 중 세 명(75.4%)은 ‘주택 공급 물량 감소’를 이유로 꼽았다. 직방에 따르면 새해 서울 입주 물량은 1만2334가구로 작년(3만470가구)에 비해 59% 급감한다.
올해 부동산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줄 변수로는 ‘PF 부실 규모’(40%)가 꼽혔다. 국내 16위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연쇄 부실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 시행사 대표는 “브리지론의 본PF 전환 어려움과 미분양 증가 등으로 일부 건설사와 2금융권 파산이 우려된다”고 했다. ‘기준금리 동결·인하 여부’(36%)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시장 예상대로 올해 금리가 하향 조정되면 집값 반등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응답자의 41%는 내 집 마련 적기로 ‘올해 하반기’를 예상했다. ‘상반기’(26%)와 ‘올해 초 서둘러서’(11%) 답변 비율을 크게 웃돌았다. ‘당분간 주택 구매를 보류하라’는 의견도 16%나 됐다. 2023년 9월 설문조사 때 과반(51%)이 “(연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답한 결과와 비교해 보면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셈이다.
정부가 가계부채 등을 우려해 추가 대출 규제를 도입한 데다 PF 리스크가 커지는 등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르면 2분기 금리가 하향 조정되면 매수심리가 되살아나 하반기부터는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회복세가 나타날 수 있다. 향후 2~3년간 공급 부족 우려, 전셋값과 분양가 오름세 등 집값 상승 요인도 적지 않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PF 부실 문제가 향후 공급 감소 우려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집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주요 지역과 재건축·재개발 호재가 있는 단지에 투자할 것을 제안했다. 60%(중복 선택)는 투자 유망 지역으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를 꼽았다. ‘서울 재건축·재개발 단지’(36%), ‘마포·용산·성동·광진’(33%)이 뒤를 이었다. ‘경기 분당·일산·평촌 등 1기 신도시’도 20%로 많았다.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비사업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인혁/이유정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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