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소소한 통찰] 창의적인 사람의 MBTI, 별자리, 혈액형

입력 2024-01-03 18:08   수정 2024-01-04 00:29

“왜 이렇게 12월 생일자가 많아?”

모 광고회사에서 30명 정도의 팀을 이끌던 200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우리 팀에서는 매달 하루를 잡아서 그달에 생일인 친구들에게 떡볶이, 과자, 케이크 등 주전부리와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어줬다. 그런데 12월에 유난히 대상자가 많았다. 호기심에 출생 월별로 따져보니 팀원의 절반이 12월과 1월생이었다. 생일 달에 따른 성격 이야기가 나왔는데, 달보다는 별자리로 따지는 자료가 많았다. 그러자 한 친구가 성격은 혈액형으로 보는 게 좋다고 해 혈액형으로 팀원들을 분류해봤다. 혈액형은 더욱 놀랍게도 60% 가까운 수가 B형이었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항상 화제가 풍부하고 창조력이 넘쳐나 기획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는 어느 웹페이지에서 퍼 온 B형의 성격을 토대로, B형이 광고하는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B형 친구들이 주장했다. 생일로 보는 별자리 성격도 찾아봤다. 11월 말부터 12월 말에 걸쳐 있는 사수자리는 ‘경험’ ‘풍부한 지식’ ‘감수성’에 ‘다양한 변화가 있는 일이 좋다’고들 했다.

요즘 MZ세대라 불리는 친구들은 혈액형과 별자리보다는 MBTI가 더 익숙할 것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 타박하듯 뱉는 “너 T야?”라는 유행어는 이번 겨울철을 겨냥한 음료 광고에서 “아빠 T야?”라고 상대만 바꿔 그대로 쓰이기도 했다. ‘Thinking’의 첫 철자를 딴 ‘T’는 깊이 생각하는 타입을 가리켜 감성이 중시되는 광고와는 거리가 있다고 광고하는 친구들은 말했다. 실제 Z세대를 대상으로 한 광고 회사의 20~30대 젊은 친구들을 접해보니 세밀하게 조사한 건 아니었지만 대략 ENFP와 ENFJ가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좀 다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 최대의 광고 회사에서 창립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MBTI 조사를 했다. ISTJ 직원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ISTJ 특징으론 차분, 치밀, 근면 등이 제시되고, 어울리는 직업으로는 회계사, 공무원, 연구원 등이 나온다. 감성적 재미와 충격요법 등에 매달렸던 광고가 이제는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과 비즈니스로서 수익성 등이 중요해지는 산업으로 변하는 증거라고 했다. 실제 광고 회사 중에는 과거와는 다른 ‘과학적’ 접근 방식을 차별점으로 내세우는 곳이 꽤 많다.

사실 혈액형이건 별자리건 MBTI건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를 20개도 안 되는 유형으로 구분하고 규정한다는 게 무리다. 온라인 세계가 열린 후로는 한 사람 안에도 100명의 다른 인격체가 있다고 한다. 트렌드 부문에서 일가를 이룬 친구는 MBTI의 유행을 두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알아야 할 이유는 많은데, 실제 자신을 잘 알지 못해서.” 다양해지는 정체성, 곧 멀티페르소나(multi-persona) 시대에 이런 테스트로 자신 안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유형 정의와 분류 방식의 협소함과 오류 등의 한계를 지적하며 비판만 하기보다는 대화의 한 수단이자 통로로 활용하는 여유를 갖는 2024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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