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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직후 침체했던 미국 전환사채(CB) 시장이 지난해 큰 폭으로 회복됐다. 고금리에 자금 조달 비용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기업들이 CB 시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자료를 인용해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총 480억달러(약 63조원)어치의 CB가 발행됐다고 보도했다. 전년(약 270억달러) 대비 77% 급증한 수준이다. 2009~2019년 연 발행액 평균치(340억달러)도 웃돈다.
기준금리가 0%에 가깝게 유지됐던 2020~2021년에는 기업들이 너도나도 CB 시장에 뛰어들며 발행액이 역대 최고 수준을 찍었었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미 중앙은행(Fed)이 긴축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CB 시장 흐름이 뒤바뀌었다.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하면서 조달 금리가 낮은 CB의 매력도가 다시 높아졌다. 증시 강세로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가능성이 커진 점도 한몫했다.
CB는 발행 기업의 주가가 특정 수준(통상 채권 발행 당시 대비 25~35% 상승)까지 오르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다. 주식 전환 청구권을 주는 대신 일반 회사채보다 이자가 저렴한 편이다. 이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거나 재무 상태가 취약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초기 단계 기업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통상적으로 신기술이나 생명공학 부문에서 인기가 높았다.
최근 들어서는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해 오던 투자등급 기업들까지도 CB로 눈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다. 회사채 금리가 뛰면서 이자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투자등급 회사채의 평균 수익률은 2022년 초 2.5%에서 현재 5.2%까지 오른 상태다. 같은 기간 투기등급 회사채의 평균 수익률도 4.9%에서 7.8%로 치솟았다.
독립 자문사 매튜스사우스의 브라이언 골드스타인은 “역사적으로 CB는 투자등급 기업들이 멀리하는 투기성 상품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며 “CB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상품이 됐고, 거물급 기업들마저 이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기업공개(IPO), 후속거래(FPO), 하이일드(고위험·고수익) 회사채, 레버리지론 등 여타 자금 조달 시장이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라는 데 주목했다.
차량공유업체 우버, 유틸리티 업체 퍼시픽가스앤일렉트릭(PG&E), 에너지그룹 에버지(Evergy) 등이 가장 최근 CB 발행에 나선 사례로 꼽힌다. 특히 우버의 경우 15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CB를 발행해 연 수천만달러를 아꼈다는 계산이 나온다.
BofA의 CB 부문 전략가 마이클 영워스는 “CB 금리는 통상 일반 회사채보다 2.5~3%포인트 정도 저렴한 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우버는 약 두 달 전 금리 0.875%, 전환 프리미엄 32.5%의 조건으로 CB 발행에 나섰다. 이 회사는 지난해 CB 시장에 문을 두드린 기업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 우버의 신용등급은 BB-(S&P 기준)로, 투기등급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CB 호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 기업들이 이미 발행한 회사채의 재융자 시점이 올해 줄줄이 도래할 예정이어서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미 투자등급 기업들은 향후 5년 내로 1조2600억달러(약 1649조6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재융자해야 한다. 직전 5년 대비 12% 많은 규모다. 투기등급 기업들의 경우 재융자 부담은 1조8700억달러(약 2448조6000억원)에 이른다.
미국계 로펌 심슨대처의 글로벌 자본시장 책임자인 켄 왈라흐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2021년 기업들은 초저금리 환경을 이용해 5년 만기 CB를 대량으로 발행했고, 조만간 닥쳐올 거대한 ‘만기의 벽’ 앞에서 CB의 인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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