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2년 차 징크스’는 신인 선수가 첫 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두 번째 시즌에 겪는 부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아무리 ‘슈퍼루키’라도 ‘전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두 번째 시즌에선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2022시즌에 상금랭킹 3위에 올라 신인상을 차지한 이예원(21)도 2년 차 징크스를 겪을 것이라고 했다. 남들뿐만 아니라 본인도 이를 의식해 지난해 목표를 ‘상금랭킹 5위 내 유지’로 잡았을 정도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예원의 두 번째 시즌은 징크스가 아니라 ‘2년 차 로또’라고 해도 될 정도로 대박이 났다. 작년 국내 개막전인 롯데렌터카 여자오픈부터 우승을 쓸어 담기 시작하더니 3승을 거뒀다. 준우승을 네 번이나 했고 ‘톱10’에 13번 들며 ‘신대세’로 거듭났다. 지난 시즌 ‘대상’과 ‘상금왕’ ‘최저타수상’ 등 3관왕에 오르며 주요 타이틀을 휩쓸었다.
최근 만난 이예원은 “나도 이렇게 내가 잘할 줄 몰랐다”며 “2년 차 징크스에 대해 스스로 너무 많은 부담을 줬는데,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한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예원의 지난 시즌 성적을 뜯어 보면 그가 얼마나 ‘역대급 시즌’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상금에서 이예원은 남녀 국내 투어를 통틀어 최초로 한 해 20억원을 돌파한 최초의 선수(공식, 비공식 대회 포함)로 등극했다. 이예원은 지난해 공식 대회 성적으로만 14억2481만원을 벌어 KLPGA투어 역대 단일 시즌 누적상금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연말 이벤트 대회 위믹스 챔피언십에서 약 8억원을 벌어들이며 20억원을 넘겼다. 게임업체 위메이드가 주최한 위믹스 챔피언십은 참가자에게 상금으로 자사 가상자산 ‘위믹스’를 줬다. 이예원은 우승상금으로 25만 위믹스를 받았고, 가상자산 시세가 꾸준히 오른 덕에 이달 초 현금화하면서 약 8억원을 손에 쥐었다.
이예원은 “내가 그런 큰돈을 벌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며 “위믹스 챔피언십 상금이 그렇게 큰 줄 몰랐고, 그래서 더 편한 마음으로 한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위믹스 챔피언십에서 캐디를 해준) 유서연 프로에게 대회 전 캐디피를 ‘비율’로 책정할까 하다가 얼마 주지 못할 것 같아 일정 금액을 정해서 주기로 했는데, 서연이가 많이 아쉬워할 것 같다”며 웃었다.
데뷔 시즌 1승도 없어 ‘무관의 신인왕’이란 꼬리표를 달았던 이예원이 180도 다른 선수로 나타날 수 있던 배경에는 ‘피나는 연습’이 있었다. 이예원은 “지난 전지훈련 때 쇼트게임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쉬지 않고 다 연습하는 데 썼는데, 저녁 먹고 남들 다 쉴 때 나가서 퍼팅 연습을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새 시즌을 앞두고 들어가는 전지훈련에선 자신의 장기인 아이언샷을 더 가다듬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예원의 아이언샷 실력은 ‘그린적중률 4위’(지난 시즌 기준)가 말해주듯 이미 완벽에 가깝다. 이예원은 “나는 멀리 쳐서 비거리로 상대를 압도하는 그런 선수는 아니다”며 “내가 잘하는 것을 더 다듬는 전략을 세웠고, 그게 아이언샷”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예원의 새 시즌 목표는 ‘다승왕’이다. 이예원은 지난해 주요 타이틀을 휩쓸었지만, 딱 하나 다승부문에선 임진희(4승)에게 밀렸다. 이예원은 “지난 시즌 못 잡은 다승왕을 이번 시즌에는 노려보겠다”며 “다승왕을 차지하면 다른 개인상은 자동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팬들을 위한 ‘원포인트 레슨’도 잊지 않았다. 이예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드라이버샷의 정확성. 이예원은 “특히 아마추어일수록 드라이버샷을 잘 쳐놔야 ‘파’나 그 이상의 성적을 노려볼 수 있다”며 “페어웨이 폭이 좁은 홀일수록 정확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클럽을 한 마디 짧게 잡고 자신의 리듬으로 휘두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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