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AI 군비 경쟁'이 시작됐다

입력 2024-01-08 17:50   수정 2024-01-09 00:21

“인공지능(AI) 국가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일 AI 기술 주도권을 두고 벌어지는 각국의 경쟁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AI 기술력이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는 것이다. 2022년 11월 생성형 AI 챗봇인 챗GPT의 등장과 함께 막 오른 AI 경쟁은 이제 국가 단위로 확전했다.
AI 시대의 '핵무기'된 LLM

생성 AI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언어모델(LLM) 기술이 AI 경쟁의 핵심 전략 무기다. 연초부터 세계 각국에서 LLM ‘군비 경쟁’ 소식이 날아들었다. 프랑스의 AI 스타트업 미스트랄은 최근 4억달러(약 5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LLM 미스트랄AI를 개발한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창업 7개월 만에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로 치솟았다. 인도에선 AI 스타트업 사르밤이 현지어 모델 구축을 위해 4100만달러(약 53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는 작년 11월 말 글로벌 인재를 대거 영입해 AI 기업 AI71을 설립하고 LLM ‘팰컨’ 개발에 나섰다. 이처럼 프랑스, 영국, 독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6개국이 AI 개발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총 400억달러(약 52조원)에 달한다. 이들은 LLM 개발은 물론 생성 AI의 두뇌에 해당하는 AI 반도체도 독자 개발한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세계 AI ‘4대 구루’ 중 한 명인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AI를 핵무기에 빗댔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설 수 있는 AI가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AI 기술을 소수 국가가 독과점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각국 정부들이 앞다퉈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핵무기는 보유만 할 뿐 실제 사용하지 않지만, LLM은 전 산업에 걸쳐 널리 쓰인다. 얼마나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파괴력이 천차만별이다.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MS) 연합, 구글에 이어 네이버가 작년 8월 LLM 하이퍼클로바X를 내놓은 건 고무적이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한 초거대 LLM’이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하지만 하이퍼클로바X가 현재 글로벌 AI업계에서 3위권의 입지를 구축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해외 시장 진출, 사용자 수 증가 등 가시적 성과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글로벌 경쟁력 점검해야
AI 시대에 정보기술(IT) 기업은 내수시장 방어만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생성 AI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챗GPT와 구글의 챗봇 바드, MS의 코파일럿 등은 영어는 물론 한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전 세계 주요 언어를 빨아들이며 점령지를 넓히고 있다. 창립 9년 차인 오픈AI의 기업가치는 1000억달러(약 130조원)로 국내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 시총(100조원)을 넘어섰다.

오픈AI, 구글, MS 등의 활약에 힘입어 미국은 AI 시대에서도 패권국가 자리를 차지했다.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개발에 각각 400억~500억달러(약 52조~66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다른 국가도 정부와 기업이 손을 맞잡고 군비 경쟁에 힘을 쏟고 있다. AI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한국의 정부와 기업은 글로벌 경쟁의 중심에 있는지, 주변 국가로 밀려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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