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 대중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대학입시다. 정치 용어로 치환하면 ‘민생’의 핵심 영역이다. “H.O.T.가 누구예요?”라고 했다던 수십 년 전 수능 만점자도 이 시기엔 거의 아이돌급 대우를 받는다. 교육부가 열흘 전쯤 발표한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은 이런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대중의 관심은 수학에 쏠렸다. 제도 개편의 핵심은 수학에서 미적분Π와 기하 관련 내용이 빠진다는 것. 사실상 수능 수학이 현행 ‘문과 수학’ 수준에서 모두 출제된다는 얘기다.
모든 수학 선생님이 꺼리는 질문이 있다. “제가 이걸 배워서 도대체 어디다 써먹죠?”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을 숨기며 여러 답을 제시하지만, 선뜻 학생을 납득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위스콘신대 수학 교수인 조던 엘렌버그의 대답은 조금 신선하다. “수학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의 겉모습 아래에 숨은 구조를 보여주는 엑스선 안경이다.”(저서 <틀리지 않는 법>에서) 그는 이어 축구 선수의 트레이닝 과정에 빗대 수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축구 선수들은 누구나 도로표지용 고깔 사이를 쉼 없이 오가는 훈련을 한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 고깔은 없다. 누가 빨리 왔다 갔다 했느냐로 점수를 매기지도 않는다. 그래도 훈련은 지속된다. 이런 과정 없이는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학은 지적인 측면의 트레이닝이다.” 사고의 힘을 기르는 데 수학만 한 학문이 없다는 얘기다.
학계에서는 벌써 우려가 터져 나온다. “미적분을 배제한 수능은 나라 먹여 살릴 공대를 무너뜨리는 것”(홍유석 서울대 공과대 학장)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인공지능(AI)이나 양자역학 등의 분야는 수학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예 공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공계만의 고민거리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논리적 사고는 새로운 공학 기술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개인의 일상적인 판단에도 수학은 단단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지능이 높은 여자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지능이 낮은 남자와 결혼한다’라는 통계가 나왔다고 치자. 여기에 “원래 남자들은 똑똑한 여자들을 싫어해!” 또는 “여자가 원래 남자보다 지능이 높아!”라고 반응하는 사람을 보면 수학적 사고력을 의심해야 한다. 확률적으로 지능이 높은 사람은 소수이기에 자신보다 지능이 낮은 사람과 결혼하는 케이스가 많은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김민형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수학이 필요한 순간>)
끈질기게 사고하는 능력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인 무기다. 특히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찰나의 콘텐츠’에 중독된 요즘 같은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숙고의 시간 없이 파편 같은 정보 한조각으로 순식간에 적과 아군을 가르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의 저자 요한 하리의 말은 이런 점에서 울림이 크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문제에 긴 시간 집중할 수 있는 시민의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면 온전히 기능하는 사회를 만들 능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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