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 음식평론가(사진)의 신간 <맛있는 소설>은 문학에 대한 군침 도는 질문들로 가득한 책이다. 지난 5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먹거리는 글을 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며 “소설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선 음식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건축평론가로 일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귀국했다. 8년간의 타지 생활로 멀어졌던 한식을 다시 먹으러 다니며 ‘외부인의 시각’을 갖게 됐다.
솔직하고 ‘까칠한’ 품평을 담은 에세이 <외식의 품격>(2013)은 지금껏 10쇄 넘게 찍은 스테디셀러다. 그는 “<헨젤과 그레텔> 속 과자집을 보고 입맛을 다시고, 갓 잡은 참치회 맛을 상상하며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고 할 정도로 소설 속 음식에 대한 오랜 관심을 강조했다.
이번 신간도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은 <작은 아씨들>의 ‘절인 라임’ 이야기로 시작한다. 네 자매 중 막내인 에이미가 학교에서 몰래 먹다가 꾸지람을 들었던 음식이다. 그는 “라임은커녕 바나나조차 귀하던 시절, ‘매우 짜고 실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으로 책을 읽어나갔다”고 썼다. “이제 라임의 실체는 알게 됐지만 ‘왜 에이미는 절인 라임을 먹었다고 학교에서 쫓겨났을까’ 같은 질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죠.”
<맛있는 소설>은 뷔페 같은 음식 안내서다. 동서양 고전부터 비교적 최근작까지 다양한 메뉴를 담았다. 특히 ‘하루키 작품 세계’를 다룬 3장에선 7000쪽이 넘는 17권의 단·중·장편소설 분량 중 음식이 언급된 구절 936개를 분석한다.
“대부분 ‘하루키’ 하면 맥주를 떠올리지만, 진미(眞味)는 ‘오이’예요. <노르웨이의 숲>에선 임종을 앞둔 미도리의 아버지가 아삭한 오이를 베어 물죠. 시들어가는 생명과 물오른 생명의 대조,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먹는 오이의 묘한 식감과 맛…. 단연 하루키 작품세계에서 가장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식자재입니다.”
때로 음식은 작가의 메시지를 숨겨둔 장치가 된다. 클레어 키건의 <말 없는 소녀>가 그랬다. 친부모 밑에서 방치되다시피 자란 소녀가 친척 집에서 처음 식사하는 대목은 ‘빵에 버터가 부드럽게 발린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평론가는 “키건은 음식을 통해 앞으로 소녀가 마주할 ‘부드러운’ 일상에 관한 힌트를 줬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오역에 날 선 비평도 쏟아냈다. 그는 미국 작가 앨리스 워커가 쓴 <컬러 퍼플>의 한국어 번역에 대해 “미국 남부의 가난한 흑인 소녀인 주인공이 졸지에 영국 부유층의 빵인 ‘스콘’을 먹게 됐다”고 썼다. “서로 다른 음식인 ‘비스킷’과 ‘스콘’을 혼동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글로벌 K푸드 열풍은 걱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는 “한식 열풍이 금방 사라지는 유행이 되지 않기 위해선 고급 레스토랑뿐 아니라 골목 맛집, 길거리 음식 등 홍보를 다각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안시욱/사진=최혁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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