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예산은 국방비와 사업비 등 재량 지출과, 별도 법률에 의해 일정 금액이 배정되는 복지 예산을 축으로 하는 의무적 지출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재량 지출은 의회 합의가 필요하다. 공화당 지도부는 당초 1조5900억달러로 합의했던 총 재량 지출 증액을 허용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허용했던 61억달러의 정부 긴급 지출 권한을 폐지하고, 미 국세청 증강 예산의 상당 부분을 제외하는 등 총 200억달러 이상 삭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민주당은 고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세금 징수율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 조직과 예산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지만 공화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합의에 포함된 부문은 퇴역군인 프로그램, 교통 및 주택, 에너지·수자원 프로젝트, 농업, 식품 및 의약품 규제를 포함하는 예산 법률안이다. 예산 법률안은 오는 19일 전에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과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도 필요하다. 예산이 통과되지 못하면 미국 농무부, 교통부, 주택부 및 도시개발부 등의 정부 예산이 고갈돼 셧다운이 불가피해진다. 나머지 부처도 다음달 2일까지 예산이 처리되지 않으면 셧다운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의료와 관련해 강경파 의원들은 낙태 약품인 미페프리스톤의 약국 구입을 허용하는 식품의약국(FDA) 정책을 폐지하지 않으면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도입한 반(反)이민 정책을 복원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이미 하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불법 이민자 망명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국경 장벽 건설을 재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화당 강경파는 예산안 때문에 수개월째 민주당은 물론 의회 지도부와도 대립하고 있다. 미국의 2024회계연도 시작을 앞둔 지난해 9월 예산안 통과가 불발됐을 땐 공화당의 내분이 심각했다. 케빈 매카시 당시 하원의장의 주도로 임시 예산안을 처리해 셧다운을 피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강경파가 모두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매카시 의장이 해임됐다. 1차 임시 예산 만기인 작년 11월에도 예산안 처리가 재차 불발돼 2차 임시 예산안을 편성해 지금까지 정부를 운영해왔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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