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아파트 시장에 역전세난이 지속되고 있다. 전세대란이 빚어졌던 2년 전에 비해 전셋값이 급락한 탓에 억대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들 사이에서는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사는 직장인 박모 씨(37)는 올해 봄으로 예정된 만기가 되면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새집을 구할 예정이다. 일대 전셋값이 하락을 거듭하면서 기존 계약을 갱신하는 것보다 신규 계약을 맺는 게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집주인은 보증금을 조금만 깎고 갱신하자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며 "같은 조건이라면 보증금이 1억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체결된 전세 계약 중에는 억단위의 하락 거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산서구 탄현동 '탄현6단지' 전용 84㎡는 지난달 2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신규 체결됐다. 직전 계약인 2021년 3억7500만원에서 1억2500만원 하락한 가격이다. 덕이동 '일산하이파크시티4단지파밀리에' 전용 129㎡도 지난달 4억원에 신규 전세 계약을 맺었다. 직전 계약인 2021년 5억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내렸다.
전셋값이 떨어지다보니 '계약갱신청구권'도 의미가 없어졌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 계약을 2년 연장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보증금 상승 폭은 5% 이내로 제한된다. 하지만 하락하는 추세다보니 '갱신' 보다는 '신규' 계약위주로 체결되고 있다.
지역 부동산 중개사들은 "세입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공인중개사는 "전셋값이 떨어지다보니 기존 계약을 그대로 갱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2년 전 5억원 중반대였던 전셋값이 3억원으로 떨어진 단지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공인중개사는 "전셋값이 치솟던 2년 전에는 계약 경쟁이 벌어졌는데 이제는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면서도 "최근에는 보증금이 1000만~2000만원 정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셋값 하락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집주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서 보증금은 깎아주는 갱신 계약이 증가한 것이다.
갱신을 하면서 보증금을 낮춰주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일산동 '일신삼익' 전용 84㎡는 이달 2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갱신했는데, 이전 3억6000만원에서 보증금을 8000만원 깎았다. 같은 지역 '일신건영휴먼빌' 전용 84㎡도 4억500만원에서 3억3000만원으로 보증금을 7500만원 낮춰 전세 계약을 갱신했다. 탄현동 '일산에듀포레푸르지오' 전용 84㎡도 이전보다 1억5000만원 낮춘 3억5000만원에 전세 갱신 계약이 이뤄졌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장은 "그간 문제가 없었다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느니 기존 세입자를 붙잡는 것이 집주인에게도 이득"이라며 "집주인 입장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갱신 계약이 끝나는 2년 뒤 시세에 따라 전세금을 올리며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수 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도 "2022년 4, 5월께가 전세대란의 전고점이었던 만큼 일산 지역도 올해 상반기는 역전세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며 "다만 올해 서울의 신규 전세 공급이 제한적이기에 하반기부터는 역전세가 해소되기 시작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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