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있었고, 피해자가 있지만,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731부대에서 행해졌다는 '모성본능실험'을 보고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경성크리처'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의 각본을 쓴 강은경 작가의 말이다. 강 작가의 솔직한 고백에 연출을 맡은 정동윤 감독은 "우리는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많은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는 거 같다"며 "선악 구분은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일각에서 불거진 '식민사관' 논란에 대한 의견을 더했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KBS 2TV '제빵왕 김탁구', MBC '구가의 서', SBS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등 시청률 보증수표인 강 작가가 집필을 맡고, SBS '스토브리그' 정동윤 감독이 연출해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청춘스타 박서준, 한소희가 주인공으로 발탁되면서 7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해 시즌1과 시즌2를 동시 제작했다.
'경성크리처'에 등장하는 크리처, 괴물의 탄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731부대에서 자행된 생체실험을 모티브로 했다. 731부대는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생화학무기개발 등을 위해 인체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진 곳. 중국 하얼빈에 위치한 일본제국 육군 소속 부대로 전해진다.
하지만 '경성크리처'가 공개된 후 아이러니하게도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반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공 장태상(박서준 분)이 생체실험이 자행되던 옹성병원에서 윤채옥(한소희 분)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반면, 독립운동을 하는 애국단 청년들이 경솔하게 행동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장태상의 친구 권준택(위하준 분)이 일본군의 협박에 너무 쉽게 애국단원의 이름을 발설하는 등 민폐 캐릭터도 등장하는 것을 두고 비하 논란이 불거진 것. 동시에 몇몇 극우 일본 네티즌들은 박서준, 한소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악플 테러하기도 했다.
양극을 오가는 '경성크리처'의 반응에 강 작가는 "만든 포인트와 기대 포인트가 다른 거 같다"며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얘기는 숙제 같은 거라서 이미 다 만들어진 작품은 되돌아보기보단, 써야 하는 많은 작품의 자양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장 감독 역시 "많은 피드백을 보면서 기대치에 대한 부분이 달랐던 게 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시즌2에 이 부분들이 반영돼 만족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시즌2 작업을 이제 시작했는데, 속도감이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 더욱 신경 써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경성크리처'를 두고 식민사관이다, 반일이다, 논란이 불거진 것을 두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 작가는 "이 이야기는 사람에 집중했다"며 "반일과 친일, 이런 식의 이분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없는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 피해를 본 사람들로 나누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택도 그렇고, 다른 조선의 청년들도 어리고 젊어요. 독립을 하겠다는 의욕, 이 시대의 어둠을 끝내겠다는 의지는 강하지만 이 부분이 현실과 부딪혔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을까, 공포와 두려움은 없었을까 싶었죠. 실제로 유관순 열사는 10대, 윤봉길 의사는 20대에 그 모든 걸 버티고 해냈죠.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강 작가는 거듭 '경성크리처'가 "그 시대를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생존'과 '실종'이라는 키워드를 보여주기 위해 차근차근 서사를 쌓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설명을 위해 "다소 느리다"는 전개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오랫동안 집필활동을 하면서도 세련된 감성과 탁월한 캐릭터 활용을 보여준 강 작가는 "빠르게 가야 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이야기는 그 과정을 밟아가야 하는 작품이라 생각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옹성병원에서 탄생한 괴물의 정체는 채옥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실종된 어머니였다. 나진을 먹고, 괴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성은 잃고 폭력성만 강화되지만,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딸을 잊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생체실험자료 중 모성본능실험 관련 내용이 저를 굉장히 힘들게 했어요. 아이를 낳은 엄마를 죽음을 공포로 몰아넣고, 어느 단계까지 아이를 지킬 수 있는지 실험하는 거였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고, 가슴이 아팠어요. 거기에서 '경성크리처'가 탄생했죠."
이 과정을 함께한 배우들에게는 고마움을 드러냈다. 특히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박서준, 한소희가 일본의 불편한 역사를 담고 있는 '경성크리처'에 출연한다는 것에 "리스크가 있을 것"이라며 "최대한 많은 사람이 봐주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는데,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10대 친구들이, 일본의 젊은 친구들이 731부대를 찾아본다는 얘길 듣고, 인기 콘텐츠 2위까지 올라가고, 계속 톱10 안에 들어가는 이런 현상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최대한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봐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배우가 출연해주길 바랐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형적인 서사 코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는 많이 회자하고, 아카데미에서 상도 받는데, 그 저변에는 '어떻게 가스로 사람을 죽여'라고 하지만, '우린 더 심하게 죽었어'라는 게 저에겐 있었어요. 일본 현지 반응은 고무적인 거 같아요. 우리가 해야 했던 수많은 이야기 중 한 연결이지 않나 싶어요."
시즌1은 현대로 온 주인공들의 모습이 묘사되면서 시즌2에서 다른 배경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을 예고했다. 강 작가는 "극 중 '날 기억해주겠소?'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시대를 기억해주겠다는 것과, 살다 간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면 쓸쓸할 거 같다는 중의적 느낌이 담겨 있다"며 "그래서 기억과 맞물려 현대에 왔을 때, 얼마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나 싶었다"고 시즌2를 귀띔했다.
장 감독 역시 "78년의 세월 동안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