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서 죄다 중국말 쓰더라"…'노가다판' 비상 걸렸다

입력 2024-01-10 18:22   수정 2024-01-10 18:43


10일 오전 4시께 서울 구로동 남구로역사거리. 체감 기온 영하 1도의 추운 날씨에도 거리는 건설 현장 일자리를 구하는 일용직 근로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6년째 목수 일을 하고 있다는 김예범 씨(49)는 "2주 내내 일감을 찾으러 나왔지만, 실제 현장을 뛴 날은 2~3일밖에 되지 않았다"며 "오늘도 공치고 집에 돌아갈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40~60대 남성이 중심인 일용 근로자들이 극심한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 고금리 장기화 등의 여파로 건설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다. 그나마 남는 일자리도 중국 동포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일용 근로자는 104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9만명 감소했다. 1967년(94만3000명) 이후 최저치다. 2002년 243만6000명까지 치솟았던 일용 근로자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5세 이상 고용률(62.6%) 사상 최고, 실업률(2.7%) 역대 최저의 탄탄한 '고용 성적표'를 받아들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처럼 우려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

건설 부문 일자리 부족의 원인으로는 경기 둔화가 지목된다. 약 2년 전부터 건설 현장에서 자재 정리 일을 하고 있다는 김재만 씨(52)는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땐 주변에서 코로나19만 지나가면 사정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요새는 '지금이 더 힘들다'고 한다”고 전했다.

15년 넘게 인력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박모 씨는 “IMF 사태 때 이후로 지금과 같았던 적이 없다”며 "이곳 사무소와 연결된 건설 현장은 코로나19 전만 하더라도 25곳이 넘었지만, 지금은 15곳으로 줄었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 인력을 보내 놓고도 돈을 떼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박 씨는 “요즘엔 100만원 중 30만원은 떼인다”며 “결국 평소에 신뢰를 두텁게 쌓아 인력을 믿고 보낼 수 있는 현장에만 사람들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건설 현장에 중국 동포들이 대거 유입돼서다. 한국인 일용직 근로자들은 “'밥그릇'은 줄었는데 '숟가락'은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인력사무소 가보면 50명 중 45명은 중국말 쓰고, 한국 사람은 5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일용 근로자 간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6년째 목수 일을 하는 민모 씨(62)는 “요새는 노가다판에서도 ‘경력’이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일자리를 구하는 근로자들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인력은 줄다 보니 현장에서도 일한 기간이 짧은 이들은 선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올해로 34년째 이곳에서 새벽마다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따뜻한 차를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홍병순 씨(72)는 “저들 가운데 태반은 결국 허탕 치고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적이 없다”며 “옛날엔 겨울이 되면 근로자들 데리러 온 봉고차에서 일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핫팩이나 장갑을 나눠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일절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건설 경기를 중심으로 내수에 활력을 불어넣어 경기 회복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준공 30년 이상 된 아파트는 안전진단을 받지 않고 바로 재건축 절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은 현 정부 내 착공해 2030년 첫 입주를 목표로 추진하고, 내년 말까지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비아파트를 사들이면 취득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산정 때 주택 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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