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밀레이로부터 얻는 교훈

입력 2024-01-12 17:57   수정 2024-01-13 00:21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광물 자원, 화창한 기후….’

남미 아르헨티나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가 되지 못할 객관적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경제 성적을 기록한 나라 중 하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아르헨티나는 세계 대공황 이전 가장 부유한 10개국 중 하나였지만 2022년 기준으로는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상 67위다.

1980년대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았을 때 성당 계단에서 한 노숙자가 바람에 날아다니는 1페소짜리 지폐를 그냥 지켜보기만 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당시 미화 1달러가 640페소로 그냥 종이에 불과했다. 40년이 지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다시 방문했다. 도시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놀랍게도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도시가 ‘타임워프(time warp·시간왜곡)’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타임워프' 속 부에노스아이레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미화 달러는 여전히 ‘블루 달러’로 불리고, 어디를 가더라도 환전해 주겠다는 사람이 넘쳤다. 평범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페소화 가치는 다시 자유낙하했고, 지난해 인플레이션은 약 200%에 달했다. 페소화의 공식 환율은 미국 달러당 800페소를 넘어섰고, 암시장에선 달러당 1000페소 넘는 환율로 거래된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한 세기 동안의 부침을 끝내고 경제를 견고한 토대 위에 올려놓기를 바라지만 새로운 이니셔티브에 지쳐 있는 상태다. 1989년부터 10년간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도 달러화로 경제를 안정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대규모 경제 위기로 페소화가 폭락하면서 메넴 시대는 막을 내렸다.

아르헨티나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제도와 정책을 해체하려면 용기, 비전, 행운, 기술이 필요하다. 밀레이 대통령은 보조금을 삭감하고, 경제의 목을 조이는 규제와 관료주의를 철폐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줬다. 밀레이가 아르헨티나를 번영으로 이끌지는 미지수다. 아르헨티나 하원 257석 중 밀레이 대통령 측근이 차지한 의석은 38석에 불과하다. 법원과 관료 사회는 그의 개혁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노조도 그를 싫어한다. 밀레이와 그를 뽑아준 약 56%의 국민은 행운을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美 정치권 유혹하는 페론주의
아르헨티나의 과거가 미국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지난 수십 년에 걸친 후안 페론의 그림자 속에서 포퓰리즘 경제, 취약한 제도, 정치적 양극화, 법치주의에 대한 경멸 등은 아르헨티나 정치로 규정된다. 이와 비슷한 모습이 오늘날 미국에서 보인다. 페론은 국가가 주도하는 투자에 기반해 경제가 성장하길 원했다. 정부 관료와 인센티브에 의존하는 기업, 이들 기업과 싸우는 노조 등으로 이뤄진 ‘철의 삼각 구도’ 속에서 페론주의가 정치적으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큰 경제 피해를 안겼다. 아르헨티나와 달리 미국의 포퓰리즘은 과도한 국가 권력에는 저항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르헨티나를 망친 페론주의가 미국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은 영어로 작성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 ‘Javier Milei and Argentina’s Lessons for America’를 한국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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