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中·日전쟁' 역전극 쓴 닛케이…외국인 다시 "바이 재팬"

입력 2024-01-12 18:29   수정 2024-01-22 17:23


일본 도쿄증시가 시가총액 ‘아시아 1위’에 재등극한 것은 글로벌 투자 자금의 흐름이 바뀐 결과다. 지난 20여 년간 이어지던 ‘바이(buy) 차이나-셀(sell) 재팬’ 움직임이 일본 경제 부활로 반전됐기 때문이다. ‘버블(거품)경제’ 붕괴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도쿄증시는 이에 힘입어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자금을 빨아들이던 중국 상하이증시를 따돌렸다.
추락하던 일본의 반등
12일 도쿄증시 대표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1.5% 오른 35,577.11로 마감하며 올 들어서만 6.3%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날 버블경제 시절이던 1990년 2월 하순 이후 약 34년 만에 처음으로 35,000을 돌파한 데 이어 오름세를 이어갔다.

버블경제 막바지인 1989년 도쿄증시의 시가총액은 세계 1위였다. 그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29일 닛케이225지수는 38,91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버블경제 붕괴 이후 닛케이지수는 7054까지 추락했다. 세계 증시 순위도 5위로 떨어졌다.

도쿄증시의 시가총액이 상하이 홍콩 선전을 합한 중국 증시에 처음 따라잡힌 것은 2007년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장기 침체에 신음하는 동안 중국은 경제 성장의 본궤도를 달렸다. 3년 뒤인 2010년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은 성장 가능성이 큰 중국 주식 보유 비중을 적극적으로 높였다. 중국 정부도 외자 규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해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였다. 중국 주식을 늘리는 대신 투자 비중을 줄인 곳이 일본이었다.
증시 띄우는 日 vs 기업 때리는 中
두 나라의 상황이 바뀐 건 작년부터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미쓰비시상사 등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을 5%씩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 수년간 26,000~28,000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던 닛케이지수가 본격적으로 오름세를 탔다.

지난해 도쿄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3조1215억엔(약 28조2561억원)어치의 일본 주식을 순매수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주가가 반짝 상승한 2013년 15조엔 후 최대 규모였다.

일본 정부도 주가 부양에 적극적이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작년 4월 도쿄증시 상장사 3300여 곳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주가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PBR 1배 미만은 시가총액이 회사를 청산한 가치보다 낮은 상태로 투자자의 신뢰를 받지 못함을 뜻한다.

일본 정부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투자도 장려하고 있다. 예·적금 형태로 잠자고 있는 가계 부문의 금융자산을 투자로 돌리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올해 1월부터 투자 차익에 일정 기간 세금을 물리지 않는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의 투자 한도를 높이고 기간을 대폭 늘렸다. 일본 정부가 첨단산업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것도 투자자들을 증시에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작년 11월 새 경제대책에서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전략 산업에 5~10년 단위 장기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전략물자 생산 공장을 농지·산림에도 지을 수 있도록 토지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일본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규제를 강화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해 중반부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온라인 게임 규제 강화 대책을 발표한 직후 관련 종목이 급락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규제로 사업 환경이 급변하는 중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신이 깊어졌다는 분석이다. 리처드 구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불황이 계속되고 있어 중국의 기업과 가계가 채무 변제를 위해 투자와 소비를 억제하는 ‘일본형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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