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 가장 눈길을 끈 참가 업체 중 하나는 스와로브스키였다. 100년 넘게 크리스털 한 우물을 판 그 주얼리 업체, 맞다. ‘손기술’로 승부하는 전통기업이 최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의 ‘기술 경연장’에 출전한다니 온 산업계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와로브스키의 출품작은 차량용 디스플레이 패널.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의 도움을 받아 목걸이 재료로 쓰는 크리스털을 디지털 계기판 패널로 변신시켰다. 기존 디스플레이에 뒤지지 않는 선명함에 고급스러움까지 입히자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허물어진 업(業)의 경계.’ 전문가들은 ‘CES 2024’가 세계 산업계에 건넨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기술의 발전과 협업을 통해 스와로브스키처럼 그동안 해온 사업과 전혀 다른 업종에 뛰어드는 ‘빅 블러(big blur)’가 현실이 됐다는 얘기다.
글룩카인드는 어떻게 설립 4년 만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유모차업계에서 닳고 닳은 사람들로 회사를 꾸린 것도 아닌데. 답은 달라진 산업 생태계에 있다. ‘쨍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이를 구현해줄 기술과 부품은 널려 있으니 새로운 업종에 뛰어드는 건 일도 아니다. 엔비디아의 AI칩으로 유모차에 자율주행 기능을 장착한 것처럼 글룩카인드는 이 아이디어를 확장해 유모차를 넘어 다른 분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케빈 황 글룩카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의 경쟁자는 명품 유모차 브랜드 스토케뿐이 아니다”며 “업종을 불문한 모든 업체가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스타트업 윌텍스의 경쟁 상대는 섬유업체이자 식품업체 그리고 패션업체다. 이 회사가 내놓은 전자레인지 가방 ‘윌쿡’의 성능을 보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다. 이 가방에 차가운 주먹밥과 핫도그를 넣으면 5분 만에 김이 난다. 열전도율이 높은 발열 섬유로 제조한 덕분이다. 단숨에 가방 안 온도를 90~130도로 끌어올리는 기술을 활용하면 신개념 도시락 가방이 되고, 겨울옷이 된다.
선글라스의 대명사 레이밴은 라이벌 선글라스 업체에 겨눴던 총구의 방향을 IT 기업으로 틀었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 음악 재생 기능이 담긴 ‘스마트 선글라스’(299달러)를 미래 주력 상품으로 내놔서다.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를 파트너로 잡았기에 가능했다.
모빌리티는 각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업이 다 모여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전쟁터가 됐다. ‘TV의 대명사’ 소니와 파나소닉은 물론 ‘IT 거물’인 퀄컴 구글 아마존도 자기 부스 한복판을 자동차에 내줬다. 혼자 힘으로는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만큼 기존 자동차업체를 파트너로 들였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은 혼다와 한 팀이 됐고, 파나소닉은 인피니티와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협력 대상과 범위를 계속 넓혀나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은 “푸드테크(푸드+기술)뿐 아니라 업종을 불문하고 함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회사가 있는지 둘러봤다”며 “두산로보틱스와는 자동화 로봇을 함께 개발하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김익환/황정수/허란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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