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난 주식 팔고 세금까지 내라니…" 개미들 분통 [이슈리포트]

입력 2024-01-12 11:23   수정 2024-01-12 17:20


정부가 개인 투자자의 주식관련 세금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시장 활성화를 표면적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과세 범위가 가장 넓은 '증권거래세' 논의는 소외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만, 증권거래세 향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조차 하지 않자 개인 투자자들은 섭섭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금투세와 증권거래세는 연관이 깊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식을 거래할 때 부과되는 세금은 주식 양도소득세, 증권거래세 등 크게 두 가지다. 개인 투자자 중 대주주(금액 기준 50억원, 지분율 기준 코스피 1%, 코스닥 2%)에만 부과된다. 반면 증권거래세는 모든 투자자에게 부과된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증권거래세는 주식을 매도할 때 부과된다. 갖고 있던 주식의 주가가 반토막 나 손해를 보더라도 무조건 내야 한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에는 없는 세금이다. '손해를 봤는데, 세금까지 내야하냐'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증권거래세를 점차 낮추고 있다. 이익이 발생했을 때, 세금을 물리겠다는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2022년 코스닥 기준 0.23%였던 증권거래세 세율은 작년 0.2%로 인하됐다. 올해는 0.18%, 내년엔 0.15%의 세율이 적용된다. 100만원어치의 주식을 매도하면 이익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세금 1800원을 내는 셈이다. 코스피에 적용되는 세율은 지난해 0.05%에서 올해 0.03%로 낮아졌다. 다만 코스피엔 농어촌특별세 0.15%가 별도 적용돼 실제로 투자자가 납부하는 세금은 코스닥과 같다. 1994년 도입된 농어촌특별세는 올해 6월 30일 일몰될 예정이었지만 2034년 6월로 유효기간이 10년 연장됐다.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는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추진됐다. 금투세는 내년부터 도입될 예정이었다. 금투세는 대주주 여부에 상관없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를 상대로 해당 소득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부과한다.
"거래세 인하·금투세 도입은 자연스러운 흐름포퓰리즘 우려"
앞서 기획재정부는 2020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당시 금투세 5000만원이 공제되면 약 15만명이 과세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는 주식 소유자의 상위 2.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당초 금투세는 작년부터 부과될 예정이었지만 금융투자업계와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에 밀려 국회는 지난해 금투세 시행을 2025년으로 2년간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금투세 도입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금투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규정하며 도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열린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구태의연한 부자 감세 논란을 넘어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 도입 예정인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표 직후 기획재정부도 금투세 폐지 입장을 공식화했다.


증권거래세가 낮아진 상황에서 금투세까지 폐지되면 당연히 세입은 줄어든다. 당초 과세 당국은 금투세를 걷어 세수 결손을 메우려 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증권거래세가 낮아지면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10조1491억원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국회예산정책처가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투세가 시행될 경우 2025~2027년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연평균 1조3443억원 수준이다. 지난해 세수 결손은 60조원에 달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투세는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데 의의가 있는데, 이를 폐기한다는 건 선진국의 제도와는 다른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수 감소를 우려해 예전처럼 다시 증권거래세를 높이고, 금투세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세 정의, 형평성, 글로벌 스탠더드 등을 고려해 원점에서 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증권거래세 폐지하려면 법안 고쳐야 해 난항 예상
한편에선 세제 관련 논의에 정치적 입장이 투영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부, 여당이 1400만 개인 투자자 유권자 마음 잡기에 나섰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개인 투자자들은 금투세를 '증시 저평가' 요인으로 규정하고 비판해왔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엔 금투세 폐지 관련 내용이 없다"며 "세법 개정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공청회 등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신중히 추진해야 하는데, 총선을 앞두고 금투세 도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표심을 노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단타 매매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동장치로서 증권거래세는 필요하다"며 "금투세 도입 후 세수 추이, 효과 등을 분석한 후 증권거래세를 추가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금투세가 폐지되면 다시 증권거래세가 오를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금투세는 국내 개인 투자자에게만 적용되지만, 증권거래세는 국내 주식을 거래하는 모든 투자자에 적용되기에 조세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증권거래세 명목 세율이 낮은 점도 저항을 낮추는 요인으로 봤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는 증권거래세보다 금투세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며 "증권거래세는 외국인, 기관에도 모두 받기 때문에 명분을 만들어내기도 쉬워 금투세를 폐지와 증권거래세 인상은 맞바꿀 수 있는 카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증권거래세에 대한 여당의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선 금투세만 폐지되는 흐름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금투세와 마찬가지로 증권거래세를 완전 폐지하려면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다만 세율만 조정하려면 대통령령으로도 충분하다. 현행 증권거래세법은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세율을 조정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정부가 야당과 협의 없이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을 높인 데 이어 금투세까지 폐지, 증권거래세 개정까지 추진하면 야당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은 시행령만 개정하면 돼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아도 됐다.

지난 8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금투세 관련 세수 부족 우려에 대해 "세수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이번 세제지원들과 관련해 당장 올해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금투세 폐지가 입법사항이니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증권거래세도 같이 논의하겠다"며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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