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걷는 韓기업 vs 뛰는 日기업

입력 2024-01-15 17:53   수정 2024-01-16 00:18

일본 대표 기업인 도요타자동차, 소니그룹, 히타치제작소의 2023년 매출 합계는 64조엔(약 584조원)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직전인 2019년(약 47조엔) 대비 37%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이들 3개 기업의 순이익은 3조9066억엔에서 6조3900억엔으로 64%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이들 기업의 한국 측 경쟁 상대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3개 기업의 2023년 매출 예상치는 507조원으로 2019년 대비 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세 기업의 순익은 34조원에서 27조원으로 21% 감소했다.
기지개 켜는 일본 기업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와 디지털화의 변혁기에서 뒤처지면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상실한 일본 기업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던 히타치와 세계 전자시장의 주도권을 삼성전자에 내준 이후 콘텐츠 기업으로 변신한 소니, 전기차 대전환에 소극적이었던 도요타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잇따라 사상 최고 수준의 실적을 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를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갈 때 일본 기업들은 성큼성큼 뛰어나가면서 두 나라 대표 기업의 위상도 크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직전까지 소니의 매출과 순익은 삼성전자에 비해 각각 3분의 1 수준이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두 회사의 매출 격차는 2분의 1 수준까지 좁혀졌다. 순익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수준이 됐다. 2019년 현대차와 도요타의 매출 및 순익 차이는 각각 200조원과 20조원이었다. 반면 올해엔 매출과 순익 격차가 각각 270조원과 30조원까지 벌어질 전망이다.

지난 10~20년간 한·일 기업 간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였다. 일본 기업이 인구 1억2500만 명의 내수시장에 안주하는 동안 내수시장만으로 생존이 어려운 한국 기업들은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사업 재편·M&A로 경쟁력↑
적어도 일본 대표 기업에선 옛날 얘기다. 과감한 사업 재편으로 비대한 몸집을 슬림화하고,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정보기술(IT) 경쟁력과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2002년 약 30만 명인 히타치제작소 임직원 가운데 해외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20%였다. 2022년 36만8000명으로 불어난 히타치제작소 임직원의 57%가 해외에서 근무한다. 소니그룹은 2012년 매출의 68%를 차지하던 전자 사업 비중을 2022년 34%까지 줄였다. 그 사이 엔터테인먼트 사업 비중은 17%에서 51%로 늘렸다.

‘돈 잘 버는 일본 기업’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2013년부터 금리와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린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기업들의 실적은 줄곧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이 강화된 덕분으로 보는 전문가는 드물었다.

반면 M&A로 비주력 사업을 잘라내고, 주력 사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세계 시장에 나선 일본 기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쟁 상대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에 일본 기업 못지않은 체질 개선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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