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에 레고켐 팔았지만 경영은 계속"

입력 2024-01-16 17:50   수정 2024-01-17 01:35

“눈 감기 전까지 레고켐바이오 경영을 맡아 신약 허가까지 직접 이뤄내겠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사진)는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오리온에 회사를 매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경영권 보장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항체약물접합체(ADC) 국내 선두기업 레고켐바이오는 지난 15일 오리온에 매각됐다고 발표했다. 최대주주가 식품회사로 갑작스럽게 변경된다는 소식에 업계뿐만 아니라 주식시장까지 요동쳤다.

김 대표는 “예전부터 다국적 제약사, 국내 대기업 등 오리온보다 규모가 큰 회사들이 레고켐바이오를 사려는 의지를 보였다”며 “대규모 자금 지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훨씬 비싼 가격에 사겠다고 제안했다”고 했다. 하지만 인수합병(M&A)은 번번이 무산됐다. 김 대표는 “회사를 지배하려는 의도가 보여서 거절했다”며 “새로운 최대주주를 선택하면서 가장 최우선으로 염두에 둔 건 ‘소유하되 지배하면 안 된다’였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준에 맞는 최적의 파트너가 오리온이었다. 김 대표는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지분 일부를 오리온에 넘겼다. 오리온은 김 대표로부터 120만 주, 박세진 사장으로부터 20만 주를 기준가에서 할증 없이 5만6186원에 매입한다. 제3자 유상증자는 기준가액에서 5% 할증된 5만9000원에 보통주 796만 주를 4700억원에 확보한다. 오리온이 오는 3월 29일 대금 납입을 완료하면 지분의 25%가량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유상증자 이후 김 대표와 박 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3.37%, 0.50%로 낮아진다.

김 대표는 지난달 미국 얀센에 국내 제약·바이오 사상 최대 규모인 17억2250만달러(약 2조2400억원)에 기술수출을 성사시켰지만 아쉬움을 드러냈다.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 1상 단계인 LCB84의 임상을 더 진행해 유효성을 확인한 뒤 비싸게 기술이전하려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LCB84의 미국 임상 1상에서 환자 몇 명에게 투약을 진행했다”며 “막상 본격 임상에 착수해 보니 우리의 예상보다 두 배 이상의 자금이 필요했다”고 했다. 얀센에 조기 기술수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김 대표는 “신약 개발은 올바른 방향성과 좋은 기술, 풍부한 자금이 있어야 한다”며 “자금력과 속도 싸움을 계산한 결과, 조기 기술수출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고켐바이오는 오리온으로부터 확보한 자금으로 임상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김 대표는 “우리는 국내 톱에서 글로벌 톱으로 빨리 가기 위해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임상에 속도를 내고, 장기적으로 직접 신약 품목허가까지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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