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엔 서정주의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라는 시를 찾아 읽고 싶어진다.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처음 이 시를 읽을 때 싸락눈 내리는 심상한 풍경이 망막을 때렸다. 왜 이 시가 그토록 강렬했을까? 가끔 풍경은 돌연 의미심장한 계시와 예언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아홉 살 아이는 궁색한 집을 떠나 암무당 집에 허드렛일이나 거드는 일꾼으로 채용된다. 싸락눈 내리는 날 암무당이 앞장서고 징과 징채를 든 아홉 살 아이는 그 뒤를 말없이 따라간다.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룽지에 취직했던”이란 표현이 너스레일지라도 군식구 처지인 아이와 개에게 서열의 차이란 있을 수 없음을 드러낸다. 싸락눈이 소년의 검정 눈썹을 때리는 세상에서 차별은 덧없는 일이다. 소년의 막막한 처지야말로 이 세상에 와서 시나 쓰는 이들의 하염없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건 아닐까?
불현듯 생각하니, 나는 새삼 오랫동안 시인이었구나! 햇수로 50년이다. 반세기 동안 시를 쓰고 더러는 가르치며, 몇 해 간격으로 꾸역꾸역 시집을 묶어냈다. 시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소년이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영감도 받지 못한 채 시를 써냈다. 19세 이후 시 1000편을 쓰고 고개를 들었더니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가 내 앞에 당도해 있다. 머리는 세고, 굵은 머리카락은 만지면 부서질 정도로 가늘어졌다.
나는 무슨 보람을 바래 이토록 오래 시를 썼던가? 나는 쓸쓸함과 덧없음을 초기 자본으로 삼고, 가난한 재능을 끌어모아 근근이 시를 썼다. 다들 돈 되는 일에는 솔깃하지만 돈도 명예도 안 되는 시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은 세태에서 염소젖을 먹으며 시를 썼다. 녹색 양말, 헤어진 연인들, 거짓말하는 소년, 짓지 않은 죄에 대한 속죄, 노래하는 물, 날갯죽지를 벗고 죽은 새, 허공에서 울며 소리치는 비, 자정의 그리움, 벼락 맞은 대추나무 따위에 대해서 썼다.
지브란은 본디 지중해를 끼고 있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양치기이자 술주정뱅이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12세 때 아버지를 뺀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공립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받는다. 두 해 뒤 레바논으로 돌아와 프랑스어와 모국어로 공부하다가 5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가족의 잇따른 죽음과 맞닥뜨린다. 늘 슬픔과 고통의 피난처이던 누이동생, 형, 어머니가 차례로 병에 쓰러진 것이다. 젊은 시절엔 프랑스 파리에서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말년에 미국 뉴욕 그리니치에서 외부 출입도 하지 않은 채 은둔해서 살다가 1931년 4월,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시를 쓰는 것은 평균적 인식과 발상을 깨고 솟아오르는 상상력을 언어로 포획하는 일이다. 시인에게 상상력이란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고, 꽃에서 우주의 파동을 느끼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특별해서 시를 쓴 게 아니라 시를 썼기 때문에 보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았을 테다. 혹시 검고 짙은 눈썹에 달라붙는 싸락눈을 맞으며 징과 징채를 들고 암무당 뒤를 말없이 따르던 소년이 자라서 내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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