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부 부채비율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충당부채를 포함할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110%를 넘어선다는 분석이 나왔다. 뉴질랜드나 스웨덴 등 한국보다 고령화 진행도가 높은 선진국의 2배에 달하고, 남미 개도국인 콜롬비아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재정은 건전하다’는 착시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명예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급증하는 국가부채의 진단과 해법’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서 “2022년 기준 누적딘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 규모만 1234조8000억원으로 GDP의 57.1%에 달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국민의힘 이상민·안철수 의원실과 최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된 김경율 회계사가 이끄는 경제민주주의21, 연금연구회가 공동 주최했다.
옥 교수는 정부가 법적으로 적자를 보전해주고 있는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를 포함할 경우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부채(D2)비율은 2022년 기준 110.6%로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식 통계치인 53.5%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정부 부채 통계는 크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합친 국가채무(D1), D1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일반정부 부채(D2), D2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합친 공공부문 부채(D3)로 나눠진다. D2는 국제 비교에 주로 쓰이는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발표하는 D2 비율은 공적연금 충당부채를 제외한 수치다. OECD 통계 상 가장 최근 기준인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D2 비율은 50.6%로 OECD 평균(89.2%)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옥 교수는 “호주, 캐나다, 콜롬비아, 뉴질랜드, 스웨덴, 미국 등 6개국은 사회보장제도로 간주되지 않는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6개국의 D2 비율은 호주 71.1%, 캐나다 112.8%, 콜롬비아 82.9%, 뉴질랜드 59.5%, 스웨덴 53.9%, 미국 144.4%등이다. 통계 상으론 한국이 이들 국가보다 D2비율이 낮지만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옥 교수의 주장이다.
대형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국공채 보유 금액이 D2에서 제외되면서 일종의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옥 교수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300조원에 달하는 국공채 보유 금액이 ‘내부거래’로 취급되 D2에서 제외되고 있다. 2022년 D2(1157조 2000억원)의 26%에 달하는 규모다.
옥 교수는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한국은 비(非)기축통화국가들의 국가채무비율 평균치인 50%를 준거로 삼아야 한다”며 “부실한 재정 수치가 국제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고 재정과 금융의 동시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인해 국가 부채가 점점 쌓이는 상황에서 고강도의 지출 통제와 연금개혁 등 구조적 조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의 재정씀씀이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국가부채 수준은 2060년경엔 GDP의 200%를 넘길 수 있다”며 “방만한 교육교부금 등 의무지출에 대한 구조조정부터 예비타당성 조사 실효성 강화, 연금개혁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될 경우 2093년이면 국민연금 누적적자 규모만 GDP의 180%에 달할 것”이라며 “보험료 인상과 낸 만큼 받는 소득비례연금으로 전환 등 연금개혁과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노동개혁이 이뤄져야 국가부채의 폭증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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