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도 줄여보고 버틸 만큼 버텼는데,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전국 외식업종 폐업률이 지난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의 폐업률은 1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직원도 줄여보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더는 못 버티겠다”는 곡소리가 나온다. 고물가로 외식 비용이 급증해 소비자의 지갑이 굳게 닫히고 식자재, 인건비 부담까지 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업주가 많아진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19일 한경닷컴이 행정안전부의 ‘지방 인허가’ 통계에서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외식업 폐업률(폐업 업체 수/총 업체 수)은 10.0%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1.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전국 폐업률이 10%대를 기록한 것은 2005년 후 처음이다. 일반·휴게음식점에는 한식, 중식, 일식, 분식, 커피 전문점 등 대부분 외식업종이 포함된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서울의 폐업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고공행진한 게 특징이다. 서울은 유독 트렌드에 민감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월세 등 비용 부담이 커 폐업률이 높은 편이란 게 외식업계의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지난해(12.4%)처럼 폐업률이 12%대로 올라선 것은 2005년(12.7%)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시내 핫플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서울 강남 압구정로데오 맛집 거리에서 6년간 꼬치집을 운영해온 방송인 정준하 씨도 지난해 말 “영욕의 시간을 이제 마무리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씨는 같은 자리에서 업종을 바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압구정로데오거리에서는 ‘임대’ 표시가 붙은 건물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경닷컴 취재 결과 수십 년간 터줏대감처럼 가게 영업을 이어오던 매장 직원들도 업황이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23년째 이곳에서 가락국수집을 운영 중인 한 업주는 “우리 가게는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손님이 붐비는 식당이었는데 요즘엔 심각하게 사람이 안 온다”며 “직원을 줄였는데도 인건비가 부담돼 최근 대출을 한도까지 꽉 채워 받았다”고 했다. 인근 카페 겸 라운지 펍에서 2년째 근무하는 직원은 “낮에는 길에 사람 자체가 별로 없다”며 “직원도 최소 인원으로만 근무하고 있고, 매출은 지난해 8월 대비 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대개 자영업자들이 매장 신규 개점을 고려할 때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1순위로 꼽는데, 세종은 인구가 최근 몇 년간 급증해왔다”며 “신규 사업자가 몰려든 만큼 타격감이 더 클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밖에도 대전(11.5%), 경기(10.6%) 등이 전국 평균 폐업률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외식업 위기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고물가로 인한 경기 부진에 식음료(F&B)산업 전반의 지형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외식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수요가 위축된 와중에 가게끼리 경쟁이 심화하는 현상까지 겹쳐 매장 유지가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팬데믹 이후 밀키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등 외부 경쟁 요인도 많아졌다”고 했다.
신현보/김세린/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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