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한국의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11학년으로 미국 시애틀에 유학 보낸 김모 씨(52·남)는 21일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찔한 경험을 했다. 딸의 이름으로 걸려 온 보이스톡을 무심코 받았더니, 전화기 너머로 여자아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김 씨가 딸이라고 여긴 여성은 울면서 “납치됐다”고 했다. 잠시 후 한 남성이 전화를 건네받아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알려주는 계좌번호로 돈을 이체하지 않으면 딸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김 씨를 협박했다.
김 씨는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계좌에 얼마나 들어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전화하겠다”며 시간을 벌었다. 곧바로 딸이 다니는 미국 학교 측과 통화한 결과 딸은 아무 일 없이 채플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가 겪은 이 일은 최근 1~2년 새 유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보이스 피싱의 대표적 유형이다. 유학생 자녀의 이름으로 카카오톡 전화가 걸려 오는 데다 전화의 감도가 확 떨어져 자식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이런 보이스 피싱에 속아 수백만~수천만 원의 피해를 본 가족들도 상당수 있다. 이에 따라 해외 유학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는 유학원들에선 학부모들에게 별도의 안내 메시지(사진)를 보내 주의를 당부하기도 한다.
문제는 경찰과 범죄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는 카카오톡 운영사 카카오 측에서 모두 별다른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문제 해결에 관한 의지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학부형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할까 걱정한 김 씨가 경찰에 “문제가 심각한 것 같은데 해결 방안이 있느냐”고 문의하자 경찰에선 “딱히 방법이 없으니 각자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카카오 측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학생(F-1)·직업연수(M-1) 비자를 통해 미국 내에 체류 중인 한국 국적 유학생은 6만2617명으로,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한국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학생 나이에 해당하는 ‘조기 유학생’은 4368명으로 1.8% 늘어났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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