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해외로 이주해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 그들이 겪은 이민자로서의 삶이 작품으로 펼쳐졌다. 한국에서 보낸 유년기의 추억과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방인이기에 겪은 슬픔과 고뇌, 그리고 설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서울에서 열리는 그룹전 ‘원더랜드’에서다. 이번 그룹전을 통해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 4인 유귀미, 현남, 켄건민, 임미애의 신작이 한곳에 모였다.
유귀미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과거의 일상 공간을 그린다. 그가 직접 가 봤거나, 경험한 장소에 상상과 비현실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들을 내놨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보금자리를 튼 유귀미는 이민자이자 여성으로 또한 아이의 어머니로 타지에서 느낀 고립과 단절을 그림으로 승화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자신의 기억 속 미국과 한국의 풍경을 나란히 걸어놨다. ‘그린 레이크’는 이민자로서의 공허함을 느낄 때마다 찾던 샌프란시스코 공원의 풍경과 상상 속 호수의 이미지를 더해 그려냈다. 바로 옆엔 반포 한강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담은 한국의 풍경이 걸렸다.
켄건민의 ‘충격적인 작품’도 서울을 찾았다. 그는 세상이 주목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을 성경 및 고대 신화 이미지와 결합한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가진 가장 특징적 작업 방식은 ‘자수’다. 유화와 한국 전통 안료를 섞고 그 위에 비즈, 보석, 그리고 실들을 엮어 자수를 넣었다. 그래서 서양의 이미지를 그려낸 작품임에도 동양화를 보는 듯한 감상을 전달한다. 교회 아크릴 창문의 모양을 따 온 작품 ‘1992 웨스턴 애비뉴’는 1992년 흑인과 한인 이민자 사회 간의 무력 충돌을 모티브로 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미국 경찰이 이민자 대신 바로 옆 동네에 거주하는 백인 상류층만을 지키기 위해 ‘폴리스 라인’을 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현남은 조각 작품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그의 조각은 그 소재와 기법이 특이하다. 스티로폼이나 고철 등 주변에 버려져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조각 작업을 한다. 그는 폴리스티렌, 에폭시, 시멘트 등 산업 재료를 사용하며 기억 속 도시의 모습을 시각화한 작품들을 제작해 유명해졌다.
‘이민 1세대 작가’로 불리는 임미애의 작품은 국내 처음으로 관객을 만난다. 이번 전시에 나온 그의 작품은 마치 파편 여러 개가 캔버스에 쏟아진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데, 작가의 유년기 기억 조각들과 환상을 파편처럼 그림으로 표현했다. 전시는 2월 24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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