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미분양나면 다 사겠다"...건설사 숨은 우발부채 '논란'

입력 2024-01-25 09:35   수정 2024-01-25 22:32



아파트 건설을 위해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하는 과정에서 시공사가 미분양 물건을 전량 사들이겠다는 조건을 내건 사례가 나왔다. 증권업계에선 이 같은 숨은 리스크가 ‘우발부채’로 명확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인천 송도국제도시내에 들어서는 ‘송도자이풍경채 그라노블’의 시공사는 약 6000억원의 PF 조달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최근 금융업계에 돌린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시공사는 PF 대출의 금융 조건으로 책임준공과 ‘미분양시 대물인수’를 적시했다. 미분양 물건이 있을 때 시공사 컨소시엄이 대출만기일 이전에 해당 물건을 모두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11공구에 들어서는 이 단지는 이달 분양을 예정하고 있다. 11공구 내 최대 규모다. 지하 2층~지상 최고 47층, 23개동(아파트 21개동, 오피스텔 2개동), 총 3270가구에 달한다. 전용 84~208㎡ 아파트 2728가구와 전용 39㎡ 오피스텔 542실로 지어진다.

시장에선 미분양 때 대물인수 규모가 최대 2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약 1조원의 시공사 공사비는 상계 처리하더라도 추가로 1조원 넘는 재무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단지 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8억원 초·중반대로 거론된다. 최근 인천과 송도 매매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라 청약 성적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분양업계 분석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대물인수 조건은 시행사인 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와 2021년 사업협약을 할 당시에 있었던 조항이지 PF조달을 위해 무리하게 넣은 것은 아니다”며 “송도 11공구 미래가치와 분양가 등을 감안했을 때 미분양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해당 단지 분양수익금 배분 우선순위가 시행사에 유리한 구조인 점도 건설사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시행이익은 준공 이후 정산시점에 지급받지만, 이 사업의 경우 수익금 발생시점마다 단계적으로 시행사는 시행이익(총 5800억원)을 수취한다.

향후 실제로 대물인수 조항이 발동되면 시공사에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분양성이나 담보가치 컨소시엄 구성 등을 감안했을 때 이번 PF를 시장에서는 사실상 시공사 신용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아직까지 우발채무 규모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각종 악재가 겹치면 재무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발부채 분류기준과 공시요건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일반적으로 대물인수는 공사비 등을 못 받을 때 채무에 갈음해 아파트 등을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받아야 할 돈 대신 물건을 받는 개념이기 때문에 부채나 우발부채로 잡지 않는다.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대물인수라는 용어는 시공사가 채권자로서 공사 미수금 등을 회수하는 개념이지 만일의 사태에 책임을 지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며 “의무나 책임이 발생하는 조항이라면 책임분양처럼 우발부채로 인식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건설사들이 2023년 사업 보고서를 제출하는 대로 장기 공사 수익과 우발 부채 부문에서 누락된 공시는 없는지, 금액은 제대로 산정됐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 공사 수익 회계 처리의 적절성과 누락된 우발 부채 유무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급보증 외에 채무 인수 약정, 자금 보충 약정 등에 대한 공시가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기존 우발 부채 규모의 변화 등이 제때 반영됐는지를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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