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조 ETF 잡자"…운용사, 삼성맨 쟁탈전

입력 2024-01-25 17:37   수정 2024-02-01 16:08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KODEX 신화’를 이끌었던 삼성자산운용 출신 인력을 놓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이 120조원대로 커지고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신한자산운용 등 후발주자가 뛰어들면서 삼성 출신 인력을 뺏고 뺏기는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업계 1위 삼성운용은 잇단 전문인력 이탈에 비상이 걸렸다.
○KB운용, 김찬영 본부장 영입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찬영 한투운용 디지털ETF마케팅 본부장은 다음달 1일부터 KB운용 ETF사업본부장(상무)으로 자리를 옮긴다. 김 본부장은 KB운용에서 ETF 설계부터 마케팅까지 사업 전반을 총괄할 예정이다.

올해 취임한 김영성 KB운용 사장은 ETF 강화를 ‘제1 사업 목표’로 내걸었다. 국내 ETF 시장에서 KB운용은 7.8% 점유율로 3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운용(점유율 40.2%)과 미래에셋운용(37.2%)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ETF 사업 규모를 이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수로 김 본부장을 영입했다.

삼성운용 출신인 김 본부장은 배재규 한투운용 사장이 2022년 삼성운용에서 현재 자리로 옮기면서 영입한 인물이다. 김 본부장은 한투운용의 ETF 브랜드를 ‘KINDEX’에서 ‘ACE’로 교체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김 본부장의 이직으로 국내 ETF업계 1~5위 업체의 ETF 사업 요직은 모두 삼성 출신이 맡게 됐다. 1위 삼성운용을 거세게 추격하는 미래에셋운용의 ETF 사업은 김남기 대표가 이끌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작년 연말 인사에서 1977년생인 김 대표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김 대표는 2차전지,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여러 테마를 앞세운 ‘TIGER ETF’ 상품을 공격적으로 내놓으며 미래에셋이 삼성을 턱밑까지 추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본인의 친정인 KODEX 브랜드에 비수를 꽂은 셈이다.
○옛 동지끼리 피 튀기는 경쟁
신한자산운용의 ETF 사업 역시 삼성 출신의 김정현 본부장이 이끌고 있다. 김 본부장 외에 홍진우 전략실장, 박수민 팀장 등 실무 핵심 인력 전원을 삼성 출신으로 꾸린 뒤 1년 만에 ETF업계 8위에서 5위로 뛰어올랐다.

‘헤지펀드 강자’ 타임폴리오자산운용도 삼성 출신인 김남의 본부장을 영입한 뒤 혁신적인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김 본부장이 설계한 ‘TIMEFOLIO 글로벌AI인공지능액티브’는 지난해 5월 상장 이후 58.6% 수익률을 내고 있다.

삼성 출신 인력들은 ‘옛 동지’와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작년엔 미국 배당주와 2차전지 소재 ETF를 놓고 한투운용, 신한운용, 미래에셋이 각각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며 수수료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출혈 경쟁 끝에 미국 배당주의 ETF 총보수는 0.01%까지 낮아졌다. 갈등이 격화하자 배 사장이 김남기 대표와 김정현 본부장을 단톡방으로 불러 중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TF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삼성운용은 잇단 인력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삼성의 ETF 시장 점유율은 2020년 말까지만 해도 50%를 웃돌았지만 지난해 말 42.4%, 현재 40.2%로 떨어졌다. 미래에셋과의 격차는 1년 만에 4.7%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좁혀졌다. 삼성운용은 1위 수성을 위해 지난 연말 인사에서 기존 상무급 인사가 맡았던 ETF사업부문장을 부사장급으로 격상하고 삼성생명 출신인 하지원 부사장을 배치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 2위 미래에셋뿐 아니라 KB운용, 신한운용 등이 예산을 늘리고 공격적 마케팅에 나선 만큼 삼성자산운용도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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