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무용수들은 베트남 국립발레단 등의 단원으로 한국 무용가의 전속 무용단 활동을 병행해 성공적인 공연을 이뤄냈다. 참 신기했다. 이를 진두지휘한 분은 한국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대학교수까지 지냈다. 베트남에서는 기업가로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월급을 주며 타국에서 이런 무용단을 꾸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것도 단순 예술적 창작품이 아닌, 공공 차원에서나 제작할 만한 작품을 말이다.
코로나19 격리로 한국에 머물게 된 시간이 늘어난 그는 울산 학춤이며 북춤 등을 자신만의 안무로 승화한 신선한 무대를 발표했다. 한국에서 다시 무용가로 살아갈 결심을 한 듯 베트남 사업을 정리하러 호찌민으로 향했다. 한동안 연락 없던 그가 사업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코로나19 여파로 너나없이 힘들 수밖에 없는 시기였기에, 다시 원위치한다는 것은 돌파구가 생겼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한국에서 무용가로서의 활동을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웠지만.
그리고 지난가을 해맑은 얼굴을 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대원텍스타일 베트남법인장으로 2022년 500여 명의 직원을 22명만 남기고 정리하는 듯했지만 그해 7월 다시 사업을 재개했다. 전문 분야가 아니라 내용을 깊숙이 알진 못하지만 옷감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원사를 공급하는 세계 공급처가 이미 사라지고 한국의 한 대기업도 사업을 접은 상황에서 대원마저 폐업한다면 한국에 원사 공급이 끊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우려해서였다. 어쩌면 사업가로서는 매우 어리석은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듣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일 뿐이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우선으로 해야 하는 그 무엇, 그것은 거창하게 굳이 애국이라 이름하지 않아도 그 진정성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외심마저 들 만큼 고귀하다. “모든 기업이 베트남에 와서 이익만을 위해 일하다가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 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삶을 나누다가 갈 때가 되면 가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는 내내 처음 인연이 됐던 800년의 약속, 그 시작점에 서 있는 이름 ‘무용가 전유오’를 나는 오래도록 존경할 것이고 그 진정성을 닮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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