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원을 줄이자는 주장이 또 나왔다. 집권 여당의 임시 대표 격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개혁 방안으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실린다. 의원감축론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정치 과잉으로 빚어지는 ‘갈등 대한민국’의 진앙지가 국회라는 비판과 무관치 않다. 한국 국회는 대표적 고비용·저효율 집단으로, 사회갈등을 원내로 수렴해 풀기는커녕 진영 논리와 정파 이익에 따라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감축에 대한 반대도 있다. 입법부라는 국회의 본질적 기능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국내외 여러 현안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중요하다는 논리다. 공직선거법에는 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으로 정해져 있다. 정치개혁 차원에서 이를 250명으로 줄이자는 주장은 타당한가.
의원 1인당 9명이나 되는 보좌진은 OECD 주요국의 2~4배에 달하고, 의원 사무실은 150㎡(약 45평)로 4~5배 넓다. 인구 2500만 명인 대만도 국회의원이 110명밖에 안 된다. 특혜처럼 권한은 많은데 책임질 일은 없으니 총선 때마다 의원이 되려고 죽기 살기로 싸운다. 북유럽의 경우 의회에 유별난 특권이 없고, 국회의원은 통상 평균치 국민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고돼서 스스로 의원직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국회가 국민에 봉사하는 직이 되어야 하는데, 유별난 권한을 누리며 군림하려는 게 한국의 정치 풍토다.
국회의원 정원 줄이기는 이런 폐단을 극복하는 출발점이다. 인구도 감소하는 상황에서 250명도 많다.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 더 줄여야 한다. 그래야 엉터리 법도 덜 만들고 국민 일상과 관계없는 당리당략 싸움질도 덜하게 된다. 의원이 너무 많다 보니 경쟁적으로 만드는 법이 인기 영합의 포퓰리즘 법이 아니면 시민의 창의적 생산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 법이다. 숫자부터 줄이고 범법 의원의 경우 봉급 반납, 불체포특권도 박탈해야 한다.
의원외교라는 말도 있듯, 입법부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결국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의회의 역할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입법부로서의 국회는 행정부(정부), 사법부(법원)와 더불어 삼권분립 국가권력의 한 축인 것은 근대민주주의의 오랜 이론이다. 국회가 법 제정, 국정감사, 예산심의를 해내기에 국가가 성장하고 발전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 대통령은 권한이 과도하게 크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국회가 이를 견제해야 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국회가 ‘대통령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대표)를 겸하면서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해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던 일이 한국에서도 오래되지 않았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기능을 축소하면 그런 1인 독재, 행정부 독주가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최근의 국회, 특히 21대 국회(2020~2024년)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느냐, 최상의 성과를 냈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21대 국회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바로 국회의원 수부터 줄이자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다. 제도적 문제라기보다 특정 시기의 폐단 혹은 특정 시기 구성원의 자질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운용의 묘를 살려가며 선거를 통해 좋은 의원들을 잘 뽑는 게 중요하다. 이 책임은 모든 유권자에게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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