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현실 사이에 선 '미스터 시장경제'…"덜어내는 정책에 초점, 포퓰리즘과 거리 멀다"

입력 2024-01-28 18:15   수정 2024-01-29 01:01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달 28일 정부 정책의 컨트롤타워로 임명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인 성 실장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견지해온 주류 경제학자다. 하지만 야당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각종 감세 및 규제 완화 정책이 ‘총선을 위한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경제계 및 시장 일각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으로 돌아서는 건 아닌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학자 시절 ‘반(反)포퓰리즘’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성 실장으로선 딜레마적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한 달간 공식·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명확한 입장을 내놨다. “무언가를 더하는 정책이 아니라 덜어내는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보수 정부에서 학자 출신이 정책실장을 맡은 건 이례적이다. 상아탑에서 현실로 나와 국가 정책의 키를 잡은 성 실장이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파도를 헤쳐 나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국민이 내는 부담금은 폐지해야”
성 실장은 최근 여러 자리에서 줄곧 “불필요하거나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던 제도를 걷어내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이 더 잘 돌아가도록 걸림돌을 제거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있을 뿐 시장에 반하는 규제를 마련하거나 전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는 포퓰리즘 정책은 추진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완화 필요성을 강조한 상속증여세가 대표적이다. 성 실장은 “소득세나 법인세를 통해 한 차례 세금을 부과한 뒤 다시 상속세 및 증여세를 걷는 것은 다중과세”라고 했다. 재산세와 별개로 걷는 종합부동산세도 마찬가지다. 보유한 주택 수에 따라 다른 세율이 적용되는 중과제도 역시 성 실장이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림돌’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이 지시한 91개 법정부담금 전면 재검토와 관련해서 성 실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지난 26일 16개 부처 차관들을 불러 회의를 하며 “모두 없애는 것을 기본값으로 하고 꼭 유지해야 하는 부담금이 있다면 그 근거와 논리를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경기 부양하려면 재정 동원도 필요”
시장경제 원칙론자인 성 실장은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반포퓰리즘을 표방하다 페론주의 정당에 정권을 내준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 시절 고위 인사가 자신에게 한 조언을 자주 언급한다. “원칙주의에 가까운 결정을 하다 보니 포퓰리즘 세력에 정권을 내줬고 그래서 더 많은 포퓰리즘 정책이 수립됐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을 멀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포퓰리즘 정당에 정권을 내주지 않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성 실장은 “자유시장경제라는 원칙을 지키되 다수 국민이 원하고 국민의 불편을 덜어주는 정책이라면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 대통령실 입성 전부터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많은 개미 투자자가 한목소리로 문제를 지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공부해보니 실제 일부 문제가 있더라는 얘기다.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에 대해서도 “긴축재정 원칙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재정건전성도 중요하지만 제때 경기를 회복시키지 못하면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준다는 설명이다. 다만 지난 정부처럼 전 국민에게 현금을 뿌리는 식의 재정 활용은 “효과도 없고 부작용만 크다”고 선을 그었다.

은행에 대해서도 “국가가 특정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은행은 면허에 기반한 사실상 독과점 업종이 분명하다”며 “독과점 구조에 기반해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은행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민들을 상대로 이른바 ‘이자 장사’를 하는 것은 마냥 두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 실장은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경영진이 고용한 이사회가 회장의 셀프 연임 등을 견제하지 못하는 문제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국민연금이 1대주주라면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정책실 내 ‘레드팀’ 역할 강화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성 실장이 이론과 현실, 정무와 정책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 실장은 임명 이후 비서실장 주재 아침회의(티타임)마다 각종 경제지표를 제공한다. 정무 라인도 경제 현실을 잘 알고 각종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성 실장 자신도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고 정무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책실 내 ‘레드팀’(조직 내 약점을 발견하기 위한 전담팀)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과거 일부 정책실장이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며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여 국민을 힘들게 한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이유에서다.
정책실장 성공 조건 부처와 조율에 달려
전임들 관료와 갈등 빚거나 정권의 정책 실패 떠안기도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관료와 학자에게 ‘독이 든 성배’ 같은 자리로 꼽힌다. 국가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정무라인과 산하 수석 및 부처 장·차관 사이에 끼어 별 역할을 못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진보 정권에선 학자 출신이 자신의 생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정권을 위기에 빠트린 사례도 있다. 전 정부의 정책실장들은 현재 통계 조작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정책실장직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며 장관급으로 만들어졌다. 초대 이정우 정책실장은 진보적인 경제학자였다. 그는 김진표 당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 관료들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진보 성향이 강한 정책을 추진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때마다 관료들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실장과 김 부총리는 모두 취임 약 1년 만에 교체됐다. 김병준 정책실장-이헌재 부총리 조합도 비슷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빚은 갈등이 외부에 고스란히 공개되기도 했다.

권오규, 변양균, 윤진식, 김대기 등 관료 출신 정책실장은 부처와 큰 갈등을 빚지 않았다. 반면 이 경우 정책실장 혹은 경제부총리 중 한 명이 빛을 못 볼 때가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일부 겹치기 때문에 서로 생각이 다르면 갈등이 생기고 생각이 같으면 업무가 중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역대 보수 정부는 정책실장을 두는 것을 꺼렸다. 이명박 정부도 임기 초에는 폐지했다가 취임 2년 차에 차관급으로 부활시켰다. 박근혜 정부 때는 임기 내내 정책실장이 없었다. 현 정부 역시 지난해 11월에야 정책실장을 두기로 결정했다.

역대 정부 인사들은 성공한 정책실장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실 정무라인 및 부처 관료 사이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능력이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성 실장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주요 부처 관료들과는 오래전부터 소통해왔다”며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은 없다”고 자신했다.
■ 성태윤 정책실장은 누구
文정부 포퓰리즘 정면 비판한 경제학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자유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거시경제 전문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KAIST 경영대학, 연세대 등에 몸담으며 연구 활동을 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경제 관련 부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기명 칼럼을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는 등 현실 정책 제언도 꾸준히 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1970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KDI 금융경제팀 부연구위원
△KAIST 경영대학 조교수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도병욱/양길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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