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지난 24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포럼에서 던진 일갈이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관심을 쏟는 한국 기업이 그만큼 많다. CES에 올해 참가한 한국 기업 수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다. 참가 기업 4300여 개 중 한국 기업이 780곳이다.
정 교수는 이날 메타와 구글, 애플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CES 참가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CES에 부스를 차린다는 것 자체를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들이 깔아놓은 판에 사람들이 오게 만들고, 자체 제품만으로도 주목하게 하는 힘이 있는 회사들은 굳이 CES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CES 무용론’이 연초부터 한국 스타트업 업계를 달구는 모습이다. 스타트업으로만 한정하면 올해 CES에 참가한 한국 회사는 512개로 세계 1위였다. 미국은 250개, 일본은 44개, 중국은 22개였다. 올해 CES를 참관한 한 투자사 관계자는 “CES의 스타트업 공간인 ‘유레카 파크’엔 한국인이 거의 절반이었다”며 “제품 설명도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하는 기업이 많았다”고 말했다. CES의 ‘C’가 서울 코엑스의 ‘C’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미국까지 가서 만나는 행사”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큰돈과 시간을 들여 한국인들하고만 네트워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동선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남긴 CES 참관 후기를 통해 “CES에서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전체 모인 사람 수가 3위라고 자부하는 한국 사람들이 ‘끼리끼리’의 모습을 보일 때”라고 했다.
CES 혁신상을 두고도 업계에선 설왕설래다. 올해 CES 혁신상을 받은 국내 기업은 134개로 전체 수상기업(313개)의 40%나 됐다. 업계에서는 혁신상 수상이 스타트업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본다. 사업화와 관련한 역량은 혁신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한 투자사 관계자는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지만 실제 투자나 계약으로 이어지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했다.
반면 CES 무용론이 스타트업 업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CES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게 문제지 초기 기업들이 글로벌 진출의 포석을 닦을 기회를 날려버려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CES 혁신상을 받은 한 기업은 “스타트업은 글로벌 대형 박람회가 아니면 해외 바이어들을 만나 제품을 소개할 기회가 거의 없다”며 “당장의 성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글로벌 감각을 익히고 해외에서 통하는 비즈니스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비슷한 고민과 목표를 가진 한국인들끼리 해외 박람회에서 만나 네트워킹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다양한 한국 투자사와 대기업 관계자, 동료 창업자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CES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며 끈끈해진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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