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대한민국 초토화’ 등으로 위협하더니 고체연료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핵어뢰 시험 등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고강도 복합 도발에 나선 의도는 경제난에 따른 주민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있다. 안보 불안을 가중시켜 남쪽 총선판을 흔들려는 저의도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그가 “격변하는 국제정치·안보 환경에 주동적으로 대처해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가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후보가 당선된 직후에 이뤄진 것은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이다.
러시아와도 밀착해 핵추진잠수함 등 첨단 무기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미·중, 미·러 대립 구도를 활용해 중·러를 단단한 우군으로 엮어둔 것이다. 대만해협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미국이 중동에도 발이 묶여 있는 틈새를 파고들어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의 초점은 미국 대선에도 맞춰져 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을 설정하고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 첫 경선에서 압승한 날 ‘전쟁 땐 한국 편입’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부터 그렇다. 대남기구 정리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소환이다. 미 대선 이후의 직거래 협상을 위한 밑자락 깔기다. 11월 미 대선 때까지 도발 강도를 최대한 높여 미국인들이 “워싱턴이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게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선 ‘치명적 도발’까지 제기된다. 2018년 미·북 협상 직전 미치광이 전략을 연상케 한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대북 정책 실패로 미국이 더 위험해졌다”며 “김정은은 똑똑하고 터프하고 나를 좋아했다. 우리는 잘 지냈고 (미국은) 안전했다”고 한 것은 마치 김정은과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다. 미국에선 트럼프가 동결 수준에서 북핵 용인을 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 터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 동결과 제재 해제를 맞바꾸기 한다면 악몽이다. 트럼프는 “본토 타격만 막으면 된다”는 여론을 담판 고리로 삼을 수 있다. 이를 빅딜로 포장해 “미국은 더 안전해졌다”며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고,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통미봉남에 더해 김정은이 일본 총리에게 축전을 보낸 것은 한·미, 한·일 사이의 ‘디커플링(분리)’ 의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몇 배 응징’ 발언은 더 이상 벼랑 끝 전술에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먼저 고개를 숙여 북한에 이용만 당한 전 정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팃포탯 대결 이후다. 트럼프 재집권은 아직 가정이고, ‘하노이 노딜’에서 확인됐듯 그도 김정은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미 간 확장억제 합의들이 되돌릴 수 없게 제도화되는 것도 중요하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핵 직거래를 가정한 보다 근본적 대책도 필요하다. 여차하면 우리도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시그널로 압박을 줄 필요가 있다. 한국의 핵무장이 핵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를 이용하는 것이다. 핵잠수함 추진, 전술핵 배치 요구 등도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트럼프가 2016년 대선후보 때 한·일 핵무장 허용에 대해 열려 있고, 미군을 철수할 의향이 있다고 한 점에 비춰보면 그의 안보 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가늠하기 힘든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어떤 경우든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핵 연료 재처리에 제한을 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농축우라늄이 필요한 미국과 이해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 일본은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6000기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47t을 확보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활용해 판을 흔들려는 김정은에게 맞서 우리도 담대한 협상 전략을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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