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검사라고 소개한 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A씨 명의 계좌가 특정 범죄 조직의 자금세탁에 도용됐다며 수사 협조를 요청받았다. A씨는 보이스피싱으로 처음에 의심했지만 ‘대검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받았다.
실제 한 포털사이트에 소개받은 사이트를 검색하니 대검홈페이지로 안내됐다. ‘부서별연락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찰총장과의 대화’ 등 누가봐도 행정 사이트 같았다. ‘나의사건검색’를 클릭한 A씨는 이름과 주민번호 등을 입력했다. 관련된 사건번호, 피의자 이름, 죄명 등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A씨는 매우 놀랐다. 사칭범은 “본인 명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은행서 대출을 받아 돈을 보내라”고 말했다. A씨가 약 5000만원을 보냈지만, 결국엔 보이스피싱 이었다.
A씨가 본 사이트는 일당이 법무부 형사사법포털(KICS) 홈페이지를 정교하게 모방해 만든 가짜 사이트였다. A씨는 “가짜 사이트를 진짜처럼 만들고,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검색까지 되니 믿을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등 범죄 수법이 진화하면서 관련 피해도 늘고 있다.
30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월간 전화금융사기 피해액은 작년 11월 483억원, 12월 561억원 등으로 각각 집계됐다. 지난해 1∼10월 월평균 전화금융사기 피해액이 34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8% 적었던 것에 비해 가파른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범죄조직에서 사용하는 전화 사기는 스미싱이다. 택배, 부고장, 건강보험공단 안내 등의 미끼 문자를 대량으로 보낸 뒤 피해자 휴대폰에 악성 앱을 설치하는 게 목적이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스미싱 범죄는 전체 신고·제보의 36%를 차지했다. 스미싱 시도의 70% 이상이 부고장 사칭과 해외직구와 관련한 관세청 사칭 문자가 많았다.
악성 앱이 설치되면 문자·연락처·사진 등 파일이 모두 빠져나간다. 범인들은 노출된 개인정보를 활용해 2차 범죄를 저지르고, 전화 가로채기 등을 통해 피해자를 주변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장기간에 걸쳐서 고액을 빼돌리는 사례도 상당수다.
범인들은 악성 앱이 설치된 휴대전화를 다른 범죄에 활용하기도 한다. 피해자의 지인에게 다른 미끼 문자를 발송하는 것이다. 지인들은 의심 없이 문자를 확인하기 때문에 악성 앱은 바이러스처럼 확산된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투자리딩방 사기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유튜브 광고와 전화·문자 등으로 피해자를 모집한 뒤 ‘원금보장 및 고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며 속여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리딩방 사기범들은 우선 공개 채팅방에 참여하게 한다. 해당방 안에 투자자 수백 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범인 한두 사람이 대포 계정들과 다중접속 프로그램을 이용해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짜 누리집·블로그는 물론 유명인을 사칭한 유튜브 홍보 동영상도 만든다.
이들의 유사수신·다단계 사기는 전형적인 ‘폰지사기’ 형태를 보인다. 수익을 창출할 아무런 수단 없이 원금·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피해자를 모집한다. 이들의 투자금을 활용해 다른 피해자들을 모집한 뒤 그들의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한다. 범인들은 일정 수준의 목표 금액에 도달하면 잠적한다.
유지훈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최근 보이스피싱 관련 피해자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라며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설 연휴 때 범죄 유형과 예방 대책을 함께 논의해 피해를 줄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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