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의 한 빌라 밀집지역에서 49㎡(약 15평) 남짓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41)는 최근 라떼 가격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박 씨는 지난해 초 커피 값을 메뉴별로 200~400원가량 인상했다. 이씨네 카페의 커피 값은 아메리카노가 3200원, 카페라떼가 3700원, 아인슈페너 4700원 등으로 형성돼 있다. 작년 말부터 우유 가격이 올라 라떼나 아인슈페너 등 우유가 재료인 음료 가격을 몇 백원씩 올리고 싶지만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내세우던 카페라 소비자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돼서다.
이씨는 ”가격을 조정하게 되면 대표 메뉴인 아인슈페너 등이 5000원을 넘어설 텐데 가격에 민감한 동네 장사를 하면서 인상하기가 쉽지 않다“며 ”비슷한 가격대로 커피를 파는 인근 카페가 먼저 가격을 올렸는데 손님이 30%는 줄었다고 하더라. 임대료나 공과금 인상까지 감안하면 우리도 라떼류 가격을 최소 300~400원 이상 올려야 하는데 선뜻 결정을 못 내리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3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우유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8.13으로 전년 대비 9.9%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19.1%) 이후 14년 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3.6%)과 비교해도 2.8배 수준으로 높다.
우유를 원료로 하는 유제품의 물가도 폭등했다. 지난해 발효유 물가 상승률은 12.5%로 1981년(18.4%) 이후 42년 만에 가장 높았다. 치즈는 19.5%로 2008년(22.0%)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였다. 아이스크림 물가 상승률 역시 10.8%로 2008년(14.4%) 이후 15년 만에 최고였으며, 분유도 6.8%로 2014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우유 관련 제품 물가가 크게 오른 이유는 원료인 원유(原乳) 가격이 인상된 이후 유업체들이 흰 우유와 유제품 가격을 일제히 인상했기 때문이다. 유업계와 낙농계로 꾸려진 낙농진흥회는 지난해 10월 음용유용 원유 공급 가격을 ℓ당 88원, 가공유용 원유 가격은 ℓ당 87원 올렸다. 이후 서울우유는 흰 우유 대표 제품인 ‘나100%우유(1ℓ)’ 출고가를 3% 인상했다. 대형마트 가격 기준으로 2900원대로 3000원에 육박한다. 매일유업, 남양유업, 동원에프앤비 역시 흰 우유 등 유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문제는 원유와 흰 우유 가격 상승이 시장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도미노 효과’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빵·아이스크림·커피·치즈·버터 등 우유가 들어가는 여러 제품들의 가격까지 줄줄이 오르는 중이다. 유제품을 쓰는 자영업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흰 우유 가격 상승이 커피 전문점 음료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라떼나 카푸치노 등 우유가 직접 들어가는 제품의 경우 곧바로 비용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달 커피빈은 우유가 함유된 음료 가격을 100원씩 인상했다. 지난해 1월 라떼류 가격을 200원 올린 지 1년 만에 또 올린 것이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컵커피(RTD) 가격도 올랐다. 할리스 컵커피 2종 가격은 기존 2900원에서 3000원이 됐다. 통상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카페라떼의 경우 전체 음료량의 65~85%가량이 우유로 이뤄져 있다.
커피빈 측은 가격을 올리면서 “작년부터 이어진 임차료, 원부자재비 등을 포함한 제반 비용의 인상과, 특히 우유 가격의 연쇄 인상으로 불가피하게 가격 조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프랜차이즈 업계 전반의 연쇄 인상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당장은 대형 베이커리 업체나 커피전문점들이 우유 공급선을 다변화하거나 우유 대신 두유나 식물성 대체 우유 비중을 늘리는 등 메뉴를 조정해 버텨보겠다는 분위기가 있다. 지난해 내내 커피 값이 많이 올랐다는 인식이 있어 당분간 가격 인상을 자제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들은 가격을 올리지 않고는 버티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소규모 업장일수록 원가 부담 비중이 커서 원재료를 다변화하기 어렵고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산 우유보다 값이 저렴한 수입산 멸균 우유로 대체하려는 자영업자들도 늘고 있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우유와 맛의 차이가 나 이마저도 녹록치는 않은 상황이다.
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아메리카노·에스프레소를 빼면 거의 모든 제품에 우유가 쓰일 정도로 중요한데 분유 등 대체재를 쓰면 금방 맛이 달라져 손님들의 불만이 나온다"며 ”원재료를 바꾸기가 쉽지 않고 값을 올리지 못하면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는 등 비용 절감을 해서 버티는 식이“이라고 전했다.
전방위적 물가 상승으로 동네 카페들부터 타격을 받는 셈이다. 커피 원두나 우유 뿐 아니라 음료 제조에 필요한 재료, 테이크아웃 전용 플라스틱 컵 등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고객들의 가격 저항이 커서 대부분 원가 부담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비용은 느는데 매출은 줄어 폐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 신고를 한 카페 수(지난해 11월 기준)는 1만1450곳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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