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천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서른 한살 중국 유학파 황태준 씨. 중국어능력시험(HSK) 최고등급 받을 만큼 어학 실력이 좋지만, 중국 한한령의 여파로 국내 기업들의 중국어 전공자 수요가 줄면서 취업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일하다가 공무원 시험에도 도전했지만 낙방했다.
황 씨는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평생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해 한국폴리텍대 충주캠퍼스 에너지설비과 전문기술 과정에 입학했다. 과 대표까지 하면서 에너지 관리산업기사 등 자격증 6개를 취득할 정도로 알찬 1년을 보냈다.
덕분에 입사 지원서를 낸 세 곳에서 모두 합격 통지를 받았고 이달부터 청주지방법원 공무직으로 근무하며 설비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유턴한 해외 유학파를 비롯해 대학을 이미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폴리택대에서 ‘인생 경로’를 '재설정'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한국폴리텍대는 “대학 입학(중퇴·수료) 또는 졸업 후 폴리텍대에 다시 입학하는 '유턴'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폴리텍대에 따르면 2년제 학위과정 입학자 중 ‘유턴’ 입학자의 비율은 2021년 16.8%, 2022년 18.3%, 2023년 20.3%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년 또는 6개월 직업훈련을 하는 ‘전문기술과정’에서 지난해 유턴 입학자는 57.9%로 절반을 웃돈다.
기존 경력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대체가 쉽지 않은 기술을 배워 인생 2막을 열겠다는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게 폴리텍대의 설명이다.
여러 교육과정에서 황 씨 같은 해외 유학파도 찾아볼 수 있다.
박소희(26·여) 씨는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UEA) 약대 파운데이션(foundation·학부예비과정)을 수료했지만,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2년 전 대전캠퍼스 스마트로봇자동화과 2년제 학위과정에 입학했다.
식당 매니저, 택배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인생을 당당히 살아가려면 나만의 특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자동화 시스템 설계·구축·제어·유지보수 기술을 익히고, 생산자동화산업기사 등 3개의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자동화장비 유지관리 업체인 ‘사람과 세상’에 취업해 헝가리 SK이노베이션 이차전지 공장에서 장비 제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주환(33·남) 씨는 대학 4학년 때 캄보디아 투자회사에 취업했다. 5년간 매뉴얼 개발 일을 했지만 “나도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겠다”라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한다. 정 씨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가져야겠다”라고 마음먹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지난해 제주 캠퍼스 전기시스템제어과 전문기술 과정에 입학했다.
1년 과정 수료 전에 전기기사, 소방설비산업기사(전기) 자격증을 따고 현재 제주시 친환경 에너지 공급업체 대은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임춘건 이사장 직무대리는 “학력, 경력 등에 관계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도전과 성장을 위해 우리 대학을 찾고 있다”며 “저마다 능력과 적성을 살려 좋은 일자리를 찾고 역량을 펼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폴리텍대는 3월 중순까지 2년제 학위과정과 직업훈련 과정 신입생을 모집한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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