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잘 팔수록 승진?" SK그룹 '파이어세일' 카운트다운

입력 2024-02-01 08:06   수정 2024-02-02 15:34

이 기사는 02월 01일 08:0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주요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SK그룹이 위치한 서울 서린동 본사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딜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 SK그룹이 비주력 투자자산의 매각 등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저금리가 이어진 2022년까지 '딥체인지'를 내걸고 인수·합병(M&A) 시장을 휩쓸던 SK그룹이 '파이어 세일'로 돌변했다는 관전평도 나오고 있다.
임원 파견·매각설 진화...연초 IB 관심은 SK에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베트남 현지 법인의 일부 투자담당 임원을 교체하는 등 변화를 줬다. 과거 SK그룹 차원에서 투자한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SK동남아투자법인을 통해 보유 중인 투자자산 재조정을 추진해왔다. 2018년 동남아투자법인이 설립된 후 총 3조원을 투입한 7개사가 매물로 거론됐다.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그룹(SK 지분율 6.1%)과 베트남 재계 2위 마산그룹(9.5%)을 비롯해 △베트남 1위 약국 체인 파마시티(14.5%) △베트남 식음료업체 크라운엑스(4.9%) 등이었다. 일부 포트폴리오는 지난해 말 논의 막바지까지 갔다가 막판 협상 과정에서 결렬되기도 했다. SK그룹은 동남아 투자 포트폴리오의 현금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 현지에 직접 투자 인력을 파견한 것으로 풀이된다.

M&A업계에선 동남아 자산 외에도 SK그룹의 주요 자산들의 '매각설'이 연초부터 시장을 달구기로 했다. 몸값이 5조원까지 평가되는 SK㈜의 자회사 SK스페셜티가 대표적인 타깃이다. 그룹 내에서 유동화 방안이 한 때 검토됐지만 현재는 진행하지 않기로 잠정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SKC의 자회사인 동박제조사 SK넥실리스도 매물로 거론됐지만 이는 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매각 측 의사와 무관하게 IB들이 시장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한 아이디어(banker's idea)가 와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선 IB들이 의미있는 인수 후보를 초청해오면 SK그룹에서도 언제든 거래 기회를 열어 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SK하아닉스 SK텔레콤 등 그룹 핵심 계열사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들이 잠재 매물이 될 정도로 현금화에 고삐를 쥘 것이란 시각이다.
무분별한 투자 전면 재검토...PEF들은 파이어세일 기대
지난해 연말 그룹 인사로 SK그룹발(發) 매물을 기다리는 PEF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각 부회장들이 투자 의사결정을 총괄하던 체제에서 오너 일가인 최창원 신임 수펙스 의장이 리더십을 쥐는 방향으로 바뀌면서다. 확장기에 펼쳤던 무분별한 투자에도 메스를 댈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M&A로 몸집을 불렸던 SK에코플랜트와 SK스퀘어 등이 사업 재조정 1순위로 분류된다. IB업계에선 SK에코플랜트가 1조원을 투입해 인수한 동남아 폐기물 처리 업체인 테스도 잠재 매물로 거론됐다.

수펙스를 중심으로 진행한 해외 투자 건들에 대한 정리에도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SK㈜와 SK E&S가 공동으로 1조6000억원을 투자했던 미국 플러그파워는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다. SK E&S가 2021년 7000억원을 투입해 인수한 미국 신재생에너지업체 키캡처에너지와 같은해 4700억원을 투자한 미국 에너지솔루션 업체인 레브리뉴어블스도 사업 확장을 두고 고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확장 과정에서 SK㈜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의 재무구조가 악화일로를 걸은 점도 그룹이 긴축에 나선 배경이다. 2022년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던 그룹의 총차입금은 지난해 상반기 119조원까지 늘었다. SK하이닉스, SK온 등 조단위 투자가 산적한 계열사들도 전방위 자금 조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SK그룹 계열사들의 대표이사(CEO)를 포함한 주요 임직원들의 성과평가(KPI)에 자산 매각을 포함한 '포트폴리오 재조정' 성과가 반영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룹에 정통한 한 PEF 관계자는 "수년 전 만해도 M&A를 검토만 해도 임직원의 성과로 잡혀서 같은 매물을 두고 여러 계열사가 과열 경쟁하기도 했다"라며 "이제는 잘 파는 게 성과평가에 반영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상전벽해했다"고 말했다.

차준호 / 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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