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벤처 씨 말리는 VC 보릿고개…CVC 규제부터 확 풀어라

입력 2024-01-31 17:52  

지난해 벤처캐피털(VC) 신규 투자금액이 전년보다 20%가량 감소한 5조3977억원에 그쳤다.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지만, 국내 VC 356곳 중 45곳은 지난해 벤처펀드 결성과 투자 실적이 전무할 정도다. 고금리와 기업공개(IPO) 규모 축소 등 여파로 VC 보릿고개가 길어지는 모습이다.

VC는 우리 산업의 미래인 벤처·스타트업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 같은 역할을 한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VC가 씨 뿌리기를 못하고 있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해 딥테크·바이오 등 새로운 분야로 산업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는 판에 올해 투자 시장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려를 키운다. 자금줄 역할을 하는 모험자본이 제 기능을 못하면 벤처업계가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국내 3만5123개 벤처기업(2022년 말 기준)에서 일하는 종사자는 80만8824명으로 4대 그룹 전체 고용 인력보다 6만여 명 더 많다. 이 중 정규직 비율은 96.8%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투자를 살려 벤처 활력을 높이는 것은 민생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정부는 벤처 지원을 위해 정책자금을 상반기에 집중 공급한다는 계획이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민간자금 출자와 회수시장 확대를 위한 과감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활성화가 급선무다. 2021년 허용된 CVC는 기업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하는 VC다. 현재 전체 VC 투자의 31%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해 벤처 창업부터 성장, 회수 및 재도전·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아직 까다로운 설립 기준과 출자·차입 비율 제한에 발이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CVC 도입을 주도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최근 반개혁 입법 의원으로 지목하고 공천 배제 의견을 낸 것은 어이없다. ‘재벌 특혜’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시대착오적 반(反)기업이야말로 반개혁이자 반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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