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을 부리는 ‘헬스장 먹튀’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장기 계약을 유도한 뒤 폐업하는 기존 방식뿐 아니라 개점 전부터 각종 연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소비자를 현혹하거나, 트레이너를 이용해 가짜 매출을 일으키는 방식이 총동원되고 있다. 헬스장 먹튀는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사실상 없어 피해자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M헬스장은 창업 전부터 ‘계획된 먹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애초에 체육시설업으로 신고하지 않고, 장기 회원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신고 없이 회원을 모집하는 건 불법이다. 업체는 영업 중단 당일까지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회원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우 대한피트니스경영자협회장은 “먹튀를 염두에 두고 창업한 일부 업체는 6개월~1년 치 매출을 모두 당월 매출로 잡은 뒤 신규 회원이 늘지 않는 시점에 폐업한다”며 “다른 사장만 내세워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헬스장 피해 구제 신청 건수는 3165건으로 2022년(2654건)보다 19.2% 늘었다. 2020년부터 4년간 접수된 피해만 1만 건이 넘는다. 소비자원은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사실상 없다. 이에 3개월 이상의 선불 이용료를 받는 체육시설업체를 대상으로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헬스장 먹튀 방지법’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처리 여부는 오리무중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헬스장에선 ‘트레이너 피해자’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 각각 80개와 40개 지점을 둔 H업체와 A업체에선 대규모 횡령에 이은 소송전이 벌어졌다. 여러 직급별로 지분을 나눠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의 이들 업체에선 매출을 높이기 위해 트레이너에게 카드깡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A업체의 서울 응암동 한 지점에서만 신모씨 등 트레이너 10여 명이 돌려받지 못한 카드 대금이 2022년 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약 5개월간 7억원에 달했다. 한 전직 트레이너는 “헬스장 업체 대표가 허위 매출을 올리기 위해 트레이너에게 신규 회원 등록 전에 카드 결제를 먼저 하도록 하고 있다”며 “카드값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트레이너가 한둘이 아니다”고 전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헬스업체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먹튀와 트레이너 카드깡 영업 방식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수도권에서 연면적 800~900㎡ 전후의 헬스장을 개업하려면 수억~10억원가량의 초기자금이 필요한데, 사전회원 모집 등이 없다면 개업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성영 전국헬스클럽관장협회장은 “소비자들이 대부분 소송까지 가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먹튀가 더 늘 수도 있다”며 “보증보험 의무화 등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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