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내놨다. 높은 업무강도에 비해 보상은 적은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보상체계를 개편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약 10조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야 해 건보 재정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1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여덟 번째,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개최하고 필수의료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의료계가 외면하고 있는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 수가(의료행위에 대한 대가)를 대폭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내시경 수술 등 저평가된 수술·처치, 고난도·고위험 수술 등에 대한 수를 인상할 예정이다.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고 당직 등 진료 외 소요시간이 긴 필수의료 특성을 반영한 보완형 공공정책수가도 새로 도입한다. 중증·필수 인프라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보상해주는 대안적 지불제도도 시행한다.
이같은 필수의료 보상 강화를 위해선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복지부는 추산했다. 박민주 복지부 2차관은 사전설명회에서 "기금이나 일반 예산으로 지원하는 사업도 있지만 수가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대부분 건보 재정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건보 곳간이 고령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올해부터 적자가 기록해 2032년 20조원까지 확대됐다가 2028년에는 아예 적립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뚜렷한 지출 구조조정 계획 없이 10조원 넘게 소요되는 필수의료 대책까지 나오면서 건보 재정이 더욱 위태롭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달 말 건보 재정이 들어가는 간병비 급여화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1호 공약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발표하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맞불을 놓은 것이다. 당정은 갈수록 커지는 국민들의 간병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2027년부터 간병비를 급여화하고, 간호인력이 간병까지 해주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오는 7월부터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건보 적용이 되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로 2027년까지 10조7000억원가량의 간병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결국 그만큼 건보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돈 쓸 일은 많아졌지만 건보 수입은 줄어들 전망이다. 당정은 이달 초 건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지역가입자가 보유한 자동차에 부과하는 보험료를 이르면 2월부터 없애고, 재산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할 때 적용하는 공제금액을 기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증액하기로 한 것이다.
소득에 대해서만 건보료를 내는 직장가입자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치지만 연간 1조원가량의 보험료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정부나 정치권은 건보 적립금이 24조원가량 쌓인 만큼 “당장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건보 지출 증가로 적립금이 고갈되는 게 '정해진 미래'인 만큼 재정 건전화를 위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경증 질환에 대한 건보 적용 등 불필요한 지출을 억제하는 방향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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