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기업 사건은 판결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평가다. 기업 분할, 특허, 인수합병(M&A) 등 전문적인 영역을 살피려면 법관들이 재판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해서다. 이런 점을 감안해도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통상 4~5년을 기다리는 건 ‘상식 밖’이란 게 산업계의 호소다.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커지면 이에 따른 다양한 리스크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산업계에서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계 전반에 ‘노사 리스크’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대법원이 손 놓고 있는 사이 쟁점이 비슷한 사건에서 정반대 판결이 나온 탓이다. 대리점 택배 운전사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CJ대한통운은 1심(2023년 1월)과 2심(2024년 1월)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기준이 되는 판례를 내지 않은 상황에서 제각각 판결이 나오자 ‘도대체 기업들이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6년 넘게 이어진 재판으로 두 회사 모두 피해를 봤다. 한화는 검찰로부터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받았다. 사회에선 ‘갑질 기업’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한화 관계자는 “태양광 스크린프린터 사업이 지연됐고 해당 업무를 하는 엔지니어도 대부분 퇴사해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며 “선고가 빨리 나왔다면 피해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어지는 재판을 경쟁사가 공격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제약업계에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특허분쟁만 3건이다. 2019년 시작한 대원제약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펠루비 특허분쟁은 1년 넘게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복제약 회사와 오리지널 제약사 간 특허분쟁이 장기화할수록 기업의 비용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고 말했다.
최근엔 최고위급 경영자와 연관된 재판 지연 사례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3대 경영석학으로 꼽히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말 그대로 리더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라며 “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기업 관련 중요 재판은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황정수/김진성/곽용희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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