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부자는 과도한 급여를 받았는가?”
이 문장으로 시작한 200장 분량의 판결문이 테슬라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받은 550억달러(약 74조원) 상당의 주식(스톡옵션 3억주) 보상 얘기입니다. 법원의 판단은 ‘그렇다’였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은 2018년 테슬라 이사회가 승인한 머스크의 성과 보상 패키지가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캐서린 맥코믹 판사는 “보상액 규모가 동종업계 CEO가 받은 성과급 중위값의 250배에 달한다”며 “역사상 전례가 없는 막대한 금액”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보상안을 협상한 보상위원회가 머스크의 전 이혼 변호사, 20년 절친 등으로 구성돼 사실상 CEO와 한편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보상안이 일반 주주에게 ‘이해상충’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겁니다. 2018년 테슬라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리처드 토네타는 당시 테슬라 9주를 보유한 소액주주였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는 한때 헤비메탈 밴드의 드럼 연주자였고 다른 회사의 인수 건에도 소송을 낸 바 있습니다.
머스크는 판결 직후 X(옛 트위터)에 “절대 델라웨어주에 회사를 세우지 마라”며 불만 글을 쏟아냈습니다. 이어 테슬라 법인을 델라웨어에서 텍사스주로 옮기겠다며 온라인 투표를 올렸습니다. 머스크가 중대 결정 전에 여론을 얻으려 취하는 방법입니다. 110만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87%가 찬성했습니다.
보상안에 따르면 머스크는 10년간 테슬라 시가총액 및 매출 등 실적을 조합해 12단계의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한 단계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발행주식 1%에 달하는 스톡옵션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 12단계인 시가총액 6500억달러와 매출 1750억달러 혹은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140억달러 등을 달성할 경우 그가 받을 스톡옵션은 3억450만주(주식분할 기준)로 약 550억달러에 달합니다. 월급 등 현금 보상은 전무합니다. 목표를 달성 못 하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당시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590억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시가총액 6500억달러가 되려면 주가가 무려 11배 올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2018년 테슬라는 모델3 ‘생산 지옥’에 빠지며 파산설이 파다했습니다. S&P500에도 가입 못 한 ‘적자 기업’이었습니다. 목표대로면 매출에서 제너럴모터스(GM)를 넘고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게 됩니다. 이 야무진 계획이 발표되자 세간의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지난 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당시 테슬라 내부에서조차 이 계획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꿈’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테슬라 이사회는 왜 이런 거액의 보상금을 책정했던 걸까요. 2018년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포함해 보링컴퍼니, 오픈AI, 뉴럴링크 등 다양한 벤처기업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이사회는 머스크가 테슬라에 전념하지 않을까 봐 우려했고 그를 묶어두기 위해 ‘도전적인 보상책’이 필요했다고 주장합니다.
FT는 한 전직 테슬라 임원의 말을 인용해 “전 세계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머스크가 해냈다. 그는 CEO 계의 호날두이자 메시다. 550억달러가 바로 그의 몸값이다”고 전했습니다.
맥코믹 판사는 이런 상황을 잘 몰랐던 걸까요. 그렇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200쪽의 판결문엔 테슬라와 머스크의 도전과 성공의 역사를 깨알같이 기술했습니다. ‘슈퍼스타 CEO’ 머스크가 부를 쌓는 이유는 화성에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적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머스크가 테슬라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이는 이사회의 주장과 상반된 것입니다.
“머스크는 관리자가 회사에 행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와 최소 15년간 인연을 맺은 이들로 채워진 이사회는 CEO와 ‘협상이 아닌 협력’을 했다. 이사회는 머스크를 붙잡기 위해 55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필요한 근거를 대지 못했다. 이는 심각한 결함이다. 원고는 이 불공정한 계약을 취소할 권리가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테슬라 이사회는 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보입니다. 머스크 역시 테슬라 법인을 델라웨어에서 텍사스로 옮기겠다는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순순히 테슬라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최근 텍사스는 미국에서 친기업적인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낮은 법인세율과 간소한 규제 절차 덕분입니다. 델라웨어의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이겠지요.
앞서 머스크는 “25% 의결권 없이 테슬라를 AI & 로봇 기업으로 키우는 게 불편하다”는 발언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일각에선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처럼 차등 의결권 주식(최대 주주 등이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갖는 주식)을 발행하려는 수순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는 주주들의 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 연구원은 “테슬라 이사회가 2030년까지 머스크를 붙잡을 수 있도록 25% 의결권을 포함한 새 보상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필립 후초이 제프리스 연구원은 “테슬라 이사회가 이대로 운영하면 위험하다”며 “더는 머스크의 소원에 도장을 찍어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FT는 “이사회의 임무가 주주들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2018년 또는 그 이전에 테슬라에 투자한 사람들은 현재까지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보상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끄는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X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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