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고삐 풀린 말처럼 오르던 인공지능(AI) 관련주가 최근 돌연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우리 실생활에 녹아든 AI 기술을 보면서 '포모(FOMO·주가 급등 랠리에 자신만 올라서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투자'에 나섰던 개미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증권가는 기대감이 성장 속도를 압도한 만큼 조정의 시간은 피해갈 수 없더라도 "오른다"는 방향성은 뚜렷하다는 의견입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AI 관련주에 집중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들은 최근 한 달(2023년 12월 28일~2024년 2월 1일) 동안 코스피 하락분(-2.72%)보다도 더 떨어졌습니다.
KBSTAR AI&로봇(-11.24%)과 UNICORN 생성형AI강소기업액티브(-10.81%), ACE AI반도체포커스(-7.2%), KODEX AI반도체핵심장비(-6.65%), TIGER AI반도체핵심공정(-6.36%), WOORI AI ESG액티브(-5.468%), TIGER AI코리아그로스액티브(-4.45%), FOCUS AI코리아액티브(-4.21%) 등 일제히 부진한 성과를 보였죠.
최근 3개월로 늘려보면 이들 수익률은 9~16%대로 코스피 흐름 수준이거나 이를 웃도는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AI 관련주는 세계적 기업들이 AI 시장에 보다 폭넓게 발을 담그면서 시장 확대 기대감에 꾸준히 올랐습니다. 지난해 10월 구글이 전 세계 처음으로 온 디바이스 형태로 구현한 AI 스마트폰 '픽셀8 프로'를 공개했고, 지난달 삼성전자는 생성형 AI 기능을 탑재한 갤럭시S24 시리즈를 출시한 바 있죠.
이렇게 잘 나갔던 AI주가 요즘엔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개별 종목들을 살펴봐도 지난 한 주 사이 대표 AI 관련주인 이스트소프트(-34.85%), 폴라로스오피스(-21.59%), 태성(-14.72%), 가온칩스(-12.1%), 한글과컴퓨터(-11.29%), 제주반도체(-11.24%) 등이 크게 내렸습니다.
AI 관련주들의 힘이 쪽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시경제 측면에서 본다면 조기 금리인하 기대감이 계속해서 떨어지면서 기술주·성장주 환경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Fed)은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했는데요. 제롬 파월 의장은 회의 직후 "올해 안에 금리 인하를 시작하긴 하겠지만 아직 확신에 다다르진 않았다"며 신중론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최근 정부 정책 기조로 '저PBR주'가 부각된 것도 AI 관련주들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됐습니다. 투자자금이 한정된 만큼 성장주에 넣었던 자금을 빼서 정책 수혜가 예상되는 저PBR주로 옮겨넣는 투자자들이 많아진 것이죠. 실제로 이번 한 주간 성장주가 대거 포진한 코스닥시장은 유가증권시장 대비 부진했습니다.
챗GPT 개발자인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사진)의 방한 재료가 소진된 점도 주가 약세 배경입니다. 지난달 1박 2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SK그룹 최고경영진과 각각 회의를 가졌습니다. 올트먼은 최근 AI 반도체를 자체 개발·생산하겠다고 선언한 뒤, 이를 위해 글로벌 기업·자본들과 손 잡고 이른바 'AI 반도체 동맹'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내 기업들도 오픈AI의 '큰 손' 고객이 될지 관심이었습니다. 올트먼이 방한 일정이 공개되면서 우르르 올랐던 AI 관련주들은 그의 출국을 즈음해서 다시 약세로 돌아섰습니다.
주가 급랭에 개미들은 '주가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거품론과 '성장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대세론을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주식 커뮤니티를 보면 일부는 "이마트한테 졌네…내가 AI주에 물리다니", "샘 올트먼이 가니까 계좌가 훅 녹네", "AI 묻으면 잃는다" 등 한숨 섞인 토로를 했습니다. 다른 한 편에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대기업들이 투자하는 이유가 있을 것", "엔비디아 주가가 계속 오르는 것을 보면 거품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버텨본다" 등 의견도 나왔습니다.
증권가는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봤지만 중장기적인 상승 추세는 여전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최근 파월 발언으로 당분간은 금리 인하 이슈가 우호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겠지만, 해마다 가팔라지는 AI의 성장속도를 감안할 때 '결국 갈 주식'이라는 겁니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대장주인 엔비디아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국내 관련주도 선별 투자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AI는 중장기 성장 산업이므로 '손절'(손해보고 매도)보다는 '추가 매수'나 '관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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