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광역급행철도(GTX)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수도권 교통 대책을 발표했다. 수도권에서 30분대 출퇴근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내세운 스케줄에 맞춰 완공된다면 서울·수도권 교통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논쟁점이 있다. 무엇보다 134조 원의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가 문제다.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과 원주, 충남 아산까지를 대심도 고속 철도망으로 엮으면 가뜩이나 거대한 수도권은 더욱 비대해지면서 비수도권과 격차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정치적 선심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서울의 분산, 수도권 메가시티의 교통 개선, 원거리 출퇴근자 고충 경감 효과도 예상된다. GTX 통한 강원·충청 지역의 서울 연계 강화는 바람직한가.
GTX는 지하 50m 깊이의 터널에서 최고 시속 180km로 달리는 미래형 이동 수단이다. 출퇴근을 포함한 시민들 이동시간을 줄여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이 과정에서 한국 도시철도의 기술개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심도의 터널 공사는 기존 전철 건설과 공법이 달라 국내 건설업계 기술 수준도 크게 끌어올릴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교통 여건이 나아지고 편리해지면 집값 안정과 주거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 교통 개선은 개인의 행동반경을 획기적으로 넓혀 ‘강남 3구’를 비롯한 서울 요지로의 주택수요 쏠림현상도 크게 개선될 게 확실시된다. 자연스레 서울에 집중되는 주택 수요가 크게 완화하고, 집값 양극화 해소 등으로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된다. 춘천·원주·아산·천안·동두천 지역의 서울 접근성을 높이면 서울로의 출퇴근자가 아닌 경우에도 생활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 의료·문화·쇼핑·교육 등에서 더 많은 인구가 서울의 각종 인프라를 당일치기로 누릴 수 있는 것도 큰 효과다.
서울과 수도권의 경쟁력은 곧 대한민국의 국제 경쟁력이다. 글로벌 대도시 평가에서 교통과 주거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인구 3800만 명의 광역 도쿄. 광대하게 팽창하고 있는 상하이·베이징 경제권역과 서울이 경쟁하는 데도 도움 된다. 비용이 들어도 이런 인프라를 갖춰나가야 다국적기업이 한국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서울에 동북아시아 거점도 만들 것이다.
더 큰 문제는 75조 원이 넘는 민간자본 조달이다. 민간에서 이 정도의 공사 비용을 대면 그에 따른 이자비용(수익비용, MRG)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GTX 이용자는 적지 않은 요금을 내야 한다. 동원된 민간자본에 맞게 수익을 보장해줄 정도로 높은 요금을 책정하면 이용자 불만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정치와 행정은 그런 압력에 바로 굴복할 게 뻔하다. 그렇다고 정부 돈으로 손실을 보장해 이용자 부담을 줄여주면 수익자 부담 원칙이 무너진다. 일산대교 통행료, 수도권 순환도로 등 민자 유치로 건설된 SOC에서 숱하게 논란이 된 문제다.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인 춘천과 영서지방의 중심지인 원주, 서울과 거리가 있는 충청남도 아산까지를 고속철도로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으면 가뜩이나 비대한 수도권은 더 커진다. 저출산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인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격차가 더 악화되는 것이다. GTX 이용 가능 지역의 인구와 경제는 서울에 더 빨려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서울의 지하철이 연장된 파주·김포·양주·포천 등지에서는 상권이 위축되면서 서울로 흡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과 춘천이 준고속철인 ITX-청춘 열차로 연결되면서 강원대학교 앞 캠퍼스촌은 쇠락해버렸다. 경제적 효과를 사전에 계산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건너뛴다는 정부 방침도 문제다. 더구나 22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선거를 의식한 급조 정책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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