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주호민씨로부터 고소당한 특수교사에 대해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가운데, 일부 교육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의욕을 상실했다'는 취지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몰래 녹음'을 증거로 인정한 판결 이후 교육 현장이 심히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다.
2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주씨 사건 판결 결과를 놓고 현직 교육계 종사자들이 여러 의견을 개진했다. 특히 '공무원', '서울특별시교육청', '인천광역시교육청' 등으로 소속이 표기된 현직 교사들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글들이 이목을 모았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A씨는 '주호민 특수교사 유죄'라는 제목의 글에서 "더욱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어차피 1년 보고 말 애들인데 듣기 싫은 말 안 하고 안전하게 지내야겠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B씨는 '주호민은 부자지만 나머지는?'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주씨는 돈 많아서 외국 나가 살 수도 있고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도 갈 수 있는데, 결국 피해는 다른 특수학생들과 아이들이 보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C씨는 "앞으로 다른 학생 때리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도 녹음기 무서우니 '하지마' 말만 하고 그 이상의 교육은 하지 말아야겠다"며 "피해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부터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현재 특수학급 담임을 맡고 있다고 소개한 인천시교육청 소속 D씨는 "정도가 심한 아이들은 특수학급이 아니라 특수학교로 보냈으면 좋겠다"며 "수업 진행이 안 되고 같은 반 아이들도 때리고, 아비규환이다. 애들 자체가 일반 학교에서의 규칙을 지키기 어려워한다"고 했다.
공무원 E씨는 "화장실 벽에 X 칠한 거 뒤처리하고, 애들한테 밀려서 허리 물리치료 4개월 받고, 다리 등을 하도 물려 흉터도 많은데, '밉다'라는 말 때문에 (특수교사가) 하루아침에 전과자가 되는 걸 보니 진짜 현타 온다"며 "불법 녹음도 (특수학생은) 예외로 치부되면 수업 내내 내가 혹시 말실수했을까 봐 마음이 불안할 것 같다"고 했다.
교육계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유감을 표시했다. 임 교육감은 전날 브리핑에서 "재판부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판단했겠지만, 몰래 녹음한 것이 법적 증거로 인정돼 교육 현장이 위축될까 우려된다"며 "대한민국 특수교육 전체에 후폭풍을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한탄의 말이 들린다"고 했다.
교원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판결은 불법 몰래 녹음을 인정해 학교 현장을 사제 간 공감과 신뢰의 공간이 아닌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했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은 "몰래 녹음 자료의 증거 능력을 인정한 1심 판결에 유감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교육활동을 아동학대로 왜곡한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며 "교육 방법이 제한적인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전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의 아동학대 가중처벌) 등의 혐의를 받는 특수교사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A씨 측 김기윤 변호사는 즉각 항소 방침을 밝히며 "몰래 녹음에 대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경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A씨는 2022년 9월 13일 교실에서 주씨 아들(당시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 정말 싫어" 등 발언해 주씨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앞서 주씨 측은 지난해 아들에게 녹음기를 들려 학교에 보낸 뒤 녹음 내용 등을 기반으로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주씨는 선고 공판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얼마 전 대법원에서 '몰래 한 녹음은 증거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해 굉장히 우려했었는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똑바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녹음 장치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의사 전달이 어려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지 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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