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위기 상태인 것 같다. 큰일이 난듯 싶다."
메모리반도체 권위자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가 전한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분위기다. 황 교수는 연구실로 학술연수를 오는 직원들, 평소 친분이 있는 임원들을 통해 삼성전자 내부 분위기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학계 전문가다. 그는 "삼성전자 DS부문의 캐시카우가 D램이었는데, 이 사업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다"며 "압도적인 경쟁력 우위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적만 놓고봐도 비슷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346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지난해 4분기 2조1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반도체의 사업 경쟁력은 △기술력 △양산 능력 △투자 규모 등으로 결정된다. 이 중 기술 개발 속도와 관련해선 2~3년 전부터 끊임없이 경고가 나왔었다. 3위 업체 미국 마이크론이 10나노미터(nm) 3세대 D램(1z nm D램)을 먼저 개발, 공개하는 사례가 있었고 10nm 5세대 D램(1b nm) 개발 경쟁에선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캐파'라고 불리는 양산 능력과 압도적인 투자를 통해 1위 자리를 굳건히했다.
이상 신호가 감지된 건 지난해 초부터다. 챗GPT로 인해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이 불면서부터다. 생성형 AI에 활용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HBM은 D램을 쌓아 데이터 처리 용량을 높인 제품이다. 가격은 일반 D램보다 5배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져있다.
결론적으로 1년 전 삼성전자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 HBM은 D램 시장의 대세가 됐다. 올해 HBM 시장은 전체 D램 시장의 20%까지 커질 것이란 게 시장조사업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실적설명회에서 SK하이닉스는 13조원으로 추정되는 올해 설비투자(CAPEX)액을 HBM에 집중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HBM 캐파를 2.5배 늘릴 계획이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수세가 HBM 시장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응용 제품 경쟁력의 기본이 되는 범용 D램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최신 규격 D램인 DDR5(더블데이트레이트5)에 대해서도 시장에선 "SK하이닉스 DDR5의 성능이 낫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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